내가 본 것들, 경험한 것에 대한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서 이 기행을 남긴다.
한국시간 2017.01.04 12:00 - 15:00 pm
그들이 탈 비행기는 LA행 3시 출발 대한항공 KE0017편이다. A380 기종이다. J와 Y는 11시쯤 회사에서 택시를 타고 출발해 인천 공항에 열두시쯤 도착했다. S는 집에서 바로 공항으로 오기로 했다. J와 Y가 공항에서 10분 남짓 기다리자 S가 왔다. 한국은 영하의 겨울이지만 LA는 봄날씨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J는 공항에서 패딩 점퍼를 간절기의 가벼운 옷차림으로 갈아 입었다. Y와 S에게도 갈아 입을지 물었지만 둘은 괜찮다는 답변을 한다.
J의 트렁크를 다시 정비하고 티켓팅을 하러 갔다. 줄이 길다. 약간 지루해지는 찰나 그들의 차례가 됐다. 티켓팅 중에 사소한 문제가 생겼다. J가 SSSS라는 일명 랜덤 체크에 걸린 것이다. J는 제법 여러차례 미국을 다녔지만 이런 것을 당해보기는 처음이다. Y와 S도 처음 보긴 마찬가지다. 티켓팅을 하는 직원이 친절하게 설명해주면서 난처해 한다. 그도 그럴것이 그들은 LA 공항에서 다시 베가스행 비행기로 갈아타야 하는데 그 시간이 무척 촉박했기 때문이다. Y와 S의 베가스행 티켓은 미리 발권해 주었지만 J는 랜덤 체크라 그러지 못했다. 1시간 남짓한 시간 안에 입국 심사를 마치고 다음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이제는 현지 티켓팅 작업까지 추가된 것이다. 업친데 덮친격. SSSS에 대한 네이버 검색 결과는 그들을 더 멘붕에 빠트리기에 충분했다. 모두가 약간 긴장했다.
J와 Y는 로밍을 하고 보조 배터리를 받았다. J는 필요가 없다며 배터리를 S에게 건낸다. J의 기업인 카드 덕분에 공항의 빠른 검색대를 사용할 수 있었다. 인천 공항의 가장자리에 있는 검색대였다. 기업인 카드를 가진 사람과 그 일행은 해당 검색대를 사용할 수 있다. 공항은 엄청난 인파로 붐볐지만 빠른 검색대는 놀라울만큼 한산했다. 검색대를 지나 J와 Y가 출국 심사대 줄을 선다. S는 자동 심사대로 향했다. 그가 그것을 통과할즈음 J와 Y도 이제 더이상 사전 등록을 하지 않아도 자동 심사대를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도 줄을 떠나 자동 심사대로 빠르게 통과했다.
J가 면세점 쇼핑을 할 것인지를 묻는다. Y, S 모두 그닥 살게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칼라운지로 직행한다. Y는 작년 GDC 갈때에도 이곳을 왔다. 작년 보다는 조금 더 사람이 많다고 느꼈다. 셋이 자리를 찾아 헤매다 결국 의자를 돌려서 테이블을 마주보고 앉도록 한 후에 음식을 가지러 간다. Y는 이것 저것 떠와서 먹었지만 음식 품질이 작년보다 덜하다고 느꼈다. 빵들이 지나치게 오래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셋다 빵을 조금씩 먹었고, S와 Y는 추가로 컵라면도 하나씩 끓여 먹었다. 정신 없이 오느라 모두 점심을 먹지 못해 배가 고팠다. 대충 끼니를 때우고 J는 담배를 피우고, S는 핸펀을 하고, Y는 노트북을 켜서 메일 확인을 하고 중요한 메일에 회신을 한 통 해주었다. 골치아픈 문제의 답을 알려주는 반가운 메일이었다.
라운지에서의 시간은 금방 간다. 2시 10분 즈음에 내려와서 게이트 앞에 섰다. J는 그사이 담배를 사왔다. 곧이어 탐승한다. 프레스티지란 말이 무색하게 줄이 길었다.. 불행중 다행은 셋다 일찌감치 줄을 섰기에 빠르게 탈 수 있었다는 점이다. 옆에 일등석 손님이 한 명 있다. 평소 Y는 어떤 사람들이 일등석을 타나 궁금했기에 그를 면밀히 살펴본다. 지나칠정도로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었다. 정말 평범하다는 생각을 했다. 비행기로 올라타는 길목에서는 J는 정밀 검색을 받으러 갔다. S와 Y는 먼저 탄다.
한국시간 2017.1.4 15:00 pm - 미국시간 2017.1.4 09:00 am
A380는 이층으로 되어있다. 스튜어디스가 Y에게 이층으로 가라고 안내했다. S도 따라간다. Y는 스튜어디스가 안내해 준 11E 자리에 앉았다. 비행기는 뭔가 산만한 분위기다. 스튜어디스가 S와 Y의 외투를 받아서 걸어준다. 이내 J가 도착했다. 걱정했던 것만큼 심각하진 않았던 것 같다. 다들 자리에 앉아 실내화로 갈아 신고 USB를 연결한다. 스튜어디스가 안전 설명을 하는 사이 Y는 잠이 들었다. 어제 먹었던 소주의 숙취 때문인지 피곤했다. 이내 비행기가 이륙한다.
J와 S는 모니터를 꺼내서 둘러본다. Y는 주구장창 볼거라 핸펀을 꺼내서 책을 읽는다. 조금 있다 스튜어디스가 식사 메뉴를 묻는 질문을 한다. Y는 스테이크를 J와 S는 불고기 비빔밥을 선택했다. 프레스티지석의 식사 시간은 지나칠 정도로 장황하다. 스테이크는 이랬다. 전채가 나오고 빵이 나오고 수프가 나오고 와인이 나오고 스테이크가 나오고 치즈. 과자. 과일이 나오고. 이어서 커피와 차가 나왔다. 다 먹는데 거의 꼬박 한 시간이 걸렸다. Y는 시험한다는 생각으로 죄다 달라고 해서 모두 먹어 본다. 치즈가 세 종류가 나왔는데 말랑말랑한 젤 맛있게 생긴 녀석의 반전에 당했다. 말랑한게 달달하게 생겨서는 엄청 역한 맛을 내는 치즈였기 때문이다. 이름이 궁금했지만 물어보진 않았다.
식사가 끝나고 스튜어디스가 물과 세관 신고서를 나눠준다. J와 S가 먼저 작성하고 Y는 S의 펜과 신고서를 받아 베꼈다. 이내 다들 모니터 삼매경이 빠진다. 여기 영화를 죄다 섭렵할즈음 도착하리라, 라고 Y는 생각했다. Y는 "잭 리처"라는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를 틀었다. 뻔한 내용의 뻔한 전개지만 재미있다. 그즈음 기내에 불이 꺼진다. 자는 사람도 한둘 보인다.
Y가 보던 영화가 끝났다. 탑승한지 꼬박 다섯 시간이 지난 시점, J와 S는 여전히 모니터 삼매경에 빠져있다. Y는 찌뿌둥한 몸을 좀 풀러 밖으로 나간다. 바가 있는 곳에 드러 눕는다. 세상 편하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 상태로 다시 핸펀 책읽기를 시작한다. 결국 가벼운 책을 완독했다. 난기류가 있으니 안전 벨트를 착용하라는 방송이 나온다. 흔들리지도 않는데 계속 방송은 나오는 상황이었다. Y는 버텨보다가 비행기가 조금 흔들리자 잽싸게 자세를 고쳐 앉아서는 벨트를 맨다.
벨트를 하고 있기를 십여분 좀이 쑤신다. Y는 반대편 끝 칵테일 바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서 스트레칭을 하고는 자리로 돌아왔다. S가 헤드셋을 빼고 앉아 있다. 영화를 많이 봤냐고 묻자 라면을 시키고 기다리는 중이라는 대답을 한다. Y는 수면 자세로 자리를 조정했다. 조금 있다 S의 라면이 왔다. 냄새가 향기롭다. 아까 비빔밥을 많이 안 먹더니 배가 고팠던 것 같다. 라면도 많이 먹지는 않는 눈치다. Y도 따라 시키려다 속이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참는다.
J는 두번째 CES 참관이고, S와 Y는 처음이다. S는 생애 처음 미국을 가보는 것이고, Y는 미국은 가봤지만 베가스는 처음이다. 이래저래 설레는 새해 첫 비행이다. 항상 그렇지만 모든 여행은 그 출발의 설레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