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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참 신기한 게, 영원한 건 없다는 점이다. 개발자 채용 광풍이 불어닥쳤던 코로나 시국이 지나자 혹한기가 찾아왔다. 비대면 시대가 저물면서 IT 서비스 회사들의 매출이 급감한 이유도 있지만, 인공지능의 등장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이런 경향과 무관하게 최근 몇 년간 또 다른 주된 트렌드는 신입 채용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소위 '네카라쿠배'로 불리는 좋은 회사일수록 이러한 경향이 더 두드러진다. 심지어 그런 회사에서 뽑는 신입은 면면을 잘 살펴보면 실제로는 경력이 있는 중고 신입을 원하는 경우도 많다. 어쩌다 이런 세상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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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채용 문화의 급격한 변화 지점으로 IMF 외환위기를 많이들 거론한다. 그전의 사회는 평생 직장이 있었고, 연공서열이 존재했다고 한다. 즉, 직원은 회사에 한 번 충성하면 회사는 그 직원을 어쨌든 평생 책임지는 구조였던 것이다. 물론 나는 그때 사회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로 그랬는지는 모른다.
이런 문화는 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평생 직장은 사라지고, 연공서열 자리에는 연봉이란 시스템이 도입됐다. 회사가 직원의 평생을 책임지지 않는 세상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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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직원이 버려지는 것을 본 생존자는 어떤 생각을 할까? '아, 나는 더 열심히 해서 충성을 바쳐 높은 성과를 내서 생존해야겠다'고 생각할까? 그건 다소 순진한 생각이다.
안정적인 직장을 추구하고 최소한의 성과만 내는 소위 '공무원 문화'가 퍼지기 시작한다. 일은 최소한도로 하며 워라밸을 지키고, N잡을 뛰거나 투자를 하는 식으로 회사에 목을 매지 않는 세상이 온 것이다. 어차피 언제든 버려질 수 있다면, 나도 여기에 최선을 다하지 않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전체보다 부분을 본다면 이는 합리적인 선택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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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직원들이 한 회사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을 본 회사의 다음 선택은 무엇일까? 바로 직원에 대한 투자를 더 줄이는 것이다. 교육이나 복지 같은 장기적 투자를 줄이고, 당장 생산성을 낼 수 있는 인력을 선호하게 된다. 키워서 오래 함께 가겠다는 생각보다는 당장 일을 할 수 있는 직원을 선호하는 것이다. 언제든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직원에게 투자하는 것은 다음 회사에게만 좋은 일을 시켜주는 셈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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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모든 문제는 회사와 직원 간의 신뢰가 사라진 것에서 출발한다. IMF 외환위기 이후 평생 직장 개념이 사라지고, 회사가 직원을 보호하지 않게 되면서 이러한 신뢰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직원은 회사가 언제든 자신을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회사는 직원이 언제든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좋은 합은 회사도 직원을 믿고, 직원도 회사를 믿으며 장기적으로 상생하는 구조지만, 현실에서는 쉽지 않다.
이 문제는 잘 생각해보면 죄수의 딜레마와 닮았다. 게임 이론에 따르면 안타깝게도 죄수의 딜레마에서 내쉬 균형은 서로가 배신하는 선택을 통해 이루어진다. 겉으로는 세상이 비합리적으로 보일지라도, 사실은 매우 합리적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직원이 워라밸을 중시하며 다른 기회를 찾는 것이나, 회사가 신입을 채용하지 않고 기존 직원에게 덜 투자하는 것 모두 너무 아쉬워 하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