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1

@codemaru · June 17, 2015 · 5 min read

이제는 흐릿해진 기억인데 아마도 초등학교 3-4학년 정도 였던 것 같다. 그 해 여름 난 우리 동네에 있는 갈비집 형들과 놀았던 기억이 있다. 신기한 사실은 난 그 형들을 그 전에도 알았고, 그 후에도 알았지만 그 해 여름 말고는 친하게 놀았던 기억이 거의 없다. 근데 무슨 이유였는지 그 해 여름에는 퍽이나 붙어 다니면서 자주 놀았다.

갈비집 아저씨는 자식이 세 명 있었다. 아들, 아들, 딸이었는지 아들, 딸, 아들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데 아무튼 아들이 둘이었고 딸이 하나였다. 셋 다 나보다는 나이가 많았다. 그 당시 우리 동네에는 두만이라는 전설적인 깡패가 있었다. 내가 한글을 배우던 무렵부터 동네 녀석들한테 듣게 된 전설인데 사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 전설의 깡패를 실제로 마주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소문에는 그 전설의 깡패를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갈비집 큰 형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갈비집은 제법 컸다. 큰 마당이 있었고 그 속에 건물이 대략 세 개 정도 있었다. 주인 아저씨는 장사가 잘되서 나중에는 호텔 뒷편 건물에 분점을 내기도 했었다. 그 해 여름을 나는 매일같이 그 형들과 갈비집 마당에서 의미없는 장난을 하고 놀았다. 우리가 가장 많이 한 장난은 개미를 잡아서 싸움을 붙이는 것이었다. 마당에는 큰 개미들이 정말 많았다. 우리는 그 중에 두 마리를 잡은 다음 더드미를 뜯어서 싸움을 붙였다. 왜 그런 장난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게 재밌다고 생각했다. 사실 난 그 때나 지금이나 왜 더드미를 뜯으면 개미들이 싸우는지 모른다. 그런데 형들이 그렇게 싸움을 붙였고, 그러면 실제로 개미들은 싸우는 것처럼 보였다.

무던 덥던 날이었다. 약간은 꿉꿉하기도 했다. 난 어김없이 갈비집으로 갔고 형들과 의미없는 장난질을 치고 있었다. 그러다 그 큰 형이 오늘은 진짜 재미있는 걸 보여주겠다며 따라오라고 했다. 거미가 싸우는걸 구경시켜 준다고 했다. 우리는 그 마당의 구석진 곳으로 이동했고 거기엔 실제로 거미가 있었다. 거미집을 아름답게 쳐놓고 있었다. 형은 그 평화로운 거미집에 개미를 넣었다. 그리고 난 티비가 아닌 현실 세계에서 거미가 어떻게 먹이를 잡는지 구경할 수 있었다. 거미집에 떨어진 개미는 아무런 저항도 하질 못했다. 시종일관 열세였다. 내가 받았던 가장 큰 충격은 거미가 그 개미를 실을 풀어서 칭칭 감는 장면이었다. 배가 불러서 나중에 먹으려고 그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진짜 와우에나 나오는 것처럼 거미는 흰 실을 풀어서 개미를 칭칭 감았다. 거의 다 감길 무렵 그 형은 안되겠다며 성냥에 불을 붙여서 거미집에 던졌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날만큼 굉장히 쇼킹한 장면이었다. 그 사건을 끝으로 아마도 난 그 갈비집에 더는 놀러가질 않았던 것 같다.

내가 그 형제의 소식을 마지막으로 들은 건 고등학생 때였다. 부모님께서 우연찮게 그 갈비집 이야기를 했는데, 얼마 전에 작은 아들이 오토바이를 타다가 교통 사고로 죽었다는 이야기였다.

@codem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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