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본 TV 프로그램 중에 “1달러의 삶”이란 다큐가 있어. 세계 각지에서 1달러로 하루를 해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주로 멕시코, 브라질, 인도에 관한 이야긴데, 그 곳 사람들은 단 하나의 기회도 없어. 단지 그곳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8살부터 벽돌을 깨거나, 사람들 앞에서 저글링을 하거나, 맥도날드 앞에서 구걸을 하지. 정말 불쌍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 진짜 단 1%의 선택권도 없거든. 죽거나 구걸하는 ㅠㅜ 그때 가장 가슴 아팠던 인도 여자 아이에 관한 대사, 일년 삼백육십오일을 맥도날드 앞에서 구걸 하는데 맥도날드 햄버거는 태어나서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
세상이 좀 더 편평했으면 좋겠어.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면 우리도 쉽게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보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더라.
– 그 남자
내일은 아무 생각 안하고… 아무 걱정없이… 정말 행복하게 보냈음 좋겠어.
영화 보고… 맛난거 먹고… 얘기도 하고… 웃다가… 그렇게 하루가 갔음.
손에서 계속 땀이나서… 글씨가 잘 안 써져…
자꾸 삐뚤삐뚤하고… 이상하네…
그만 쓰고 전화할께…
“압뿌라쑝”
“라삘루뚜루뚜”
– 그 여자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참 웃긴 설문 조사를 많이 했다. 그 중에 지금 생각해도 제일 웃기다고 생각하는 설문이 대한민국에 태어난 게 자랑스럽냐는 내용이었다. 초등학교 2-3학년이 대한민국에 태어난 게 자랑스러운지 아닌지를 무슨 근거로 판단을 하겠는가? 그나마 부모덕에 외국이라고 한 번 나가본 아이들이라면 비교라고 하겠지만 말이다. 난 그때 초딩이었지만 참 우스꽝스러운 설문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많은 시간이 흘렀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난 대한민국에 태어난 게 자랑스럽다고 생각한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단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나마 이곳에 태어나서 그래도 고생은 좀 덜하면서 사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언젠가 신문 기사에 난 것 처럼 우리가 벌어들이는 소득은 거의 대부분 우리가 어느 지역에 태어났는지로 결정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중간은 되는 나라에 중간은 되는 지역에 태어나서 나름 기회도 있었고, 굶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나의 의지와는 0.00000001%의 관계도 없는 단순한 그 사실 때문에 말이다.
사회주의 역시 돈에 대한 욕구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었다.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46년에 나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간 적이 있다. 당시 미국에서는 자본주의 열풍이 뜨거웠고, 사람들이 모이기만 하면 오가는 대화의 주제는 오직 돈이었다. 누가 무슨 직업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돈을 많이 벌 수 있는가가 문제였다. 그런데 나는 부다페스트에서 이와 전혀 다른 현상을 목격했다. 거기서는 누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성공을 거두었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떤 사람이 작곡 분야에서 성공을 했고, 어떤 사람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으며, 또 어떤 사람이 인정받는 화학자가 되었는지 등등… 사실 이러한 분위기는 미국의 분위기보다 훨씬 내 마음에 들었다. 그때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어느 누구도 돈에 대해 말하지 않아. 그렇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걸 생각하지.”
그들은 돈을 소유할 수 있다는 희망이 없기 때문에 차라리 말하지 않는 편을 택했던 것이다.
– 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 앙드레 코스톨라니
조카들이 내 나이가 됐을 때를 상상해본다. 그때는 나처럼 다행이라는 안도가 아닌 자랑스럽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편평하고 공정한 그런 세상. 그리고 조금은 누가 얼마를 번다는 이야기 보다는 무슨 일을 한다는 이야기를 더 많이 할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소유의 포기 때문이 아닌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로 말이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문재인 캠프의 슬로건 같은 세상이 올 수 있기를 기도하며 주문을 외워본다.
압뿌라쑝, 라삘루뚜루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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