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이었던가, 2008년 이었던가, 언젠가 K가 마트에서 정말 맛있는 거라면서 녹차라떼를 사온 적이 있었다. 그 때는 나는 이 놈의 존재감조차 몰랐던지라 난생 처음 맛보게 되었다. K가 집에서 만든 녹차라떼를 먹고는 대뜸 그랬다. 이런 건 강아지나 주라고… ㅋㅋㅋ~ 녹차도 아닌 것이 라떼도 아닌 것이 별로였다. 녹차라떼와의 첫 만남은 그랬다.
커피숍에서 내가 골르는 메뉴는 딱 하나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눈이오나 비가오나 아이스 카페 모카, 크림 뺀 아이스 카페 모카만 먹었다. 스타벅스가 우리 나라에 들어오기 전에 캐나다를 갔을 때 이 놈과 처음 만나게 됐는데 그 맛이 너무 강렬했던 것이다. 당연한 수순이겠지만 그 해 여름부터 나는 이놈에게 중독됐고, 커피숍만 가면 메뉴판도 안보고 이 놈만 주문하기에 바빴다. 뜨거운 걸 싫어하면서 적당히 단 걸 좋아하는 나에게는 꿀같은 메뉴였다.
유난히도 추운 겨울이었다. 서울 올라온지 제법 해가 지났지만 이렇게 뼛속까지 에이는 추위를 안겨주는 겨울은 정말 처음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나의 고정 메뉴에도 작은 변화가 생겼다. 너무 추워서 차마 아이스를 먹기는 그랬던 것이다. 그러다 생각난 이 놈. “커피숍 녹차라떼는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먹었는데, 내가 난생 처음 맛보았던 하우스 메이드 녹차라떼랑은 격이 달랐다…. 말 그대로 신세경… 우왕 굳… 그 날 K도 이 맛을 떠올리며 사온 거였겠지라는 생각이 절로 났다. 그리곤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나는 녹차라떼에 중독돼 버렸다.
회사 근처에 정말 미친듯이 커피 전문점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HOLLYS 녹차라떼가 제일 맛있다. HOLLYS에서 줄서서 녹차라떼를 시킨 다음 햇살이 잘드는 푹신한 쇼파에 — 점심 시간에는 쫌 빡쎄다. — 앉아서 푸는 노가리는 일품이다. 이 밥보다 비싼 커피를 마시려고 줄 서 있는 사람을 보면 토가 절로나오는데 일단 맛을보고 나면 그 기나긴 줄이 조금 이해가 가기도 한다. 물론 맛도 일품이지만 이 된장짓을 하고 나면 “디버깅 200% 가속 버프”라는 아름다운 보너스 효과를 받을 수 있다. 이 버프 받고 디버깅하면 부왘… 쩐다… ㅋㅋ~ 라떼를 마시다 2% 확률로 버그가 자동으로 해결되는 신세경을 경험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뉴요커 개발자에게 녹차라떼는 센스가 아닌 필수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아름다운 녹차라떼에게도 치명적인 한 가지 단점이 있는데, 다름아닌 가난한 프로그래머가 마시기에는 좀 비싸다는 점이다. 사실 좀 비싸다. 그래서 겁도 없이 몇 년만에 다시 하우스 메이드 녹차라떼에 도전해 보려고 하는데 그 맛이 나올지는… 후훗… 그 맛이 나오면 HOLLYS가 그리 비싼 가격에 팔지는 않았겠지?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