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근로자 관리의 어려움…

@codemaru · September 26, 2011 · 8 min read

#0.

예전에 회사 생활을 하다가 울었던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그 시절 나는 제법 열심히 일하는 프로그래머였는데, 한 날은 같은 팀원들끼리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같이 게임을 하다가 유독 나만 혼이 난 것이었다. 웃긴 것은 내가 혼날 만한 하등의 상황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사실 혼난게 뭣같아서 울었다기 보다는 억울해서 울었다. 누가봐도 그건 아닌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 느꼈다. 아 이거 x빠지게 열심히 일해봤자 하나도 소용없구나. 그 날로 그냥 쉬엄쉬엄 회사를 다녔다. 할 줄 아는 것도 남들이 못하면 못한다고 했고, 금방 할 수 있는 것도 개발팀에서 제일 못하는 사람 바로 위 정도로 일정을 맞췄다. 당연히 남들이 못잡는 버그는 나도 잡지 않았다. 그리고는 이해 관계가 끝나기가 무섭게 회사를 그만뒀다. 그런 회사에서 일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마음이 그랬다.

#1.

뛰어난 개발자의 딜레마라는 이야기가 있다. 뛰어난 개발자 A와 그저 그런 B가 있을 때 아주 어려운 과제 P가 주어진 상황이다. A는 2달을 놀다가 2주만에 P를 깔끔하게 해결했고, B는 3달 동안 x빠지게 밤새고 야근하고 다녔지만 결국 해결하지 못했다. 이 때 보통 관리자는 A는 농땡이를 쳤다고 생각하고, B는 최선을 다했음에도 과제가 너무 어려웠다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결국 승진은 B가 한다는 서글픈 스토리다. 사실 내가 봐도 세상은 좀 그렇다. 특히 대기업 다니는 형들이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한다.

#2.

우리 회사에도 뛰어난 개발자들이 많이(?!) 있다. 난 그런 개발자들이 나와 같은 감정을 회사에 느끼지 않기를 바란다. 사실 그런 감정을 느끼면 우리는 최고의 개발자가 아니라 그냥 타이핑 하는 기계 하나를 더 가진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지식 근로자에게 감정은 중요하고, 어렵지만 공정한 보상은 중요하다. 그런데 6살 어린 아이도 똑바로 할 것 같은 이 단순한 “공정한 보상”이라는 것이 실상은 굉장히 어렵다.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성과를 공정하게 판단한다는 그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 문제라는 점이다. 성과를 공정하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과제의 난이도 x와 개인의 역량 y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이 가능해야 하는데, 이걸 측정한다는 것이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과제의 난이도가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누구도 그 문제가 얼마나 해결하기 어려운지 판단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개인의 역랑 y도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그 사람이 얼마나 가능성이 있는지를 가늠하는 일 자체가 쉽지 않다. 즉, 지식 근로자의 성과를 측정한다는 자체가 애초에 넌센스라는 이야기다.

물론 이러한 개념적인 어려움 외에도 이 문제를 힘들게 만드는 점이 있다. 바로 감정이다. 평가라는 것이 주관을 넘어서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열손가락 깨물어서 안아픈 손가락이 없다고 하지만 무던 더 아픈 손가락이 있기 마련이다. 기계가 아닌 사람이 평가하면서 이러한 감정을 배제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연유로 그렇게도 많은 직장인들이 처세에 몰두하는지도 모르겠다.

끝으로 이 문제를 NP 컴플리트로 만드는 일등 공신은 다름아닌 간신들이다. 능력 없는 사람들은 보통 처세에 능하다. 그도 그럴 것이 먹고 살 방법이 그 길 밖에는 없기에 그 쪽 분야에 퍽이나 신경을 쓴다. 그러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사생활부터 시작해서 아주 사소한 것들까지 들먹이면서 흠집을 낸다. 안타깝게도 아래 직원이 하고 있는 일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의 관리자가 아니라면 이 흠집은 아주 그럴싸해 보인다. 그리고는 다음날 거위의 배는 갈라진다. 그렇게 어처구니 없는 말 한마디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사라지는 것이다. 애처로운 현실이다.

#3.

그렇다면 거위의 배를 가르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핵심 가치에 집중해야 한다. 세상에 영구 기관은 없고 만병통치약도 없다. 사람은 누구나 장점도 있고, 몇 가지 정도는 단점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그 단점이라는 것이 회사에서 그 사람에게 요구해야 하는 핵심 가치가 아니라면 어느 정도는 신경쓰지 않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싱거워 보이는 이 사소한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뛰어난 인력으로 넘쳐나는 대기업은 이런 고민이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다. 거기에는 아주 중요한 나사 하나쯤 빠져도 그 자리를 메워줄려고 대기하는 수많은 부품들이 있을테니깐 말이다. 하지만 작은 기업들에게는 사람이 전부다. 특히나 근속 횟수가 많고 히스토리를 아는 직원들의 가치란 상상을 초월한다. 그래서 더욱 그들을 보호해야 하고, 그들이 공정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들이 공정한 보상을 받지 못해 단순 타이핑 기계로 전락하거나 조금이라도 더 나은 보상을 받기 위해 능력 개발보다 처세에 집중할 때 회사 발전은 그날로 끝난 거나 다름 없는 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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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maru
돌아보니 좋은 날도 있었고, 나쁜 날도 있었다. 그런 나의 모든 소소한 일상과 배움을 기록한다. 여기에 기록된 모든 내용은 한 개인의 관점이고 의견이다. 내가 속한 조직과는 1도 상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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