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

@codemaru · November 13, 2010 · 6 min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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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부모님 생신이라 부산엘 다녀왔다. 올해는 부모님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집에서 조촐하게 밥을 먹었는데, 매형들에 조카들에 나름 북적댔다. 이제는 작은 매형까지 와서 왠지 혼자만 소외된 느낌 ㅋㅋ~ 전날 무리하게 과음한 관계로 속은 쓰려 죽겠는데 엄마가 회를 또 오지게 많이 사와서 서로 먹으라고 난리도 아닌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었다.

밥을 먹고는 다시 방에 들어와서 병원놀이, 환자놀이 모드로 들어가려는데 이 녀석들이 삼촌, 삼촌 하면서 오는게 아닌가. 특히 둘째 녀석 정말 쩔게 귀엽다. 크면 여자 꽤나 울리겠다고 우리가 농담삼아 말하는데 어찌나 귀여운지. 쓰린 속을 달래며 스마트폰에 하나도 없던 게임을 무려 두 개나 친히 다운로드 받아서 실행시켜 주었다. 첫째는 할 줄을 알고, 둘째는 방법도 모르면서 자기가 하겠다고 난리를 부리는 통에 매형이 다시 차에 내려가서 스마트폰을 가져오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아이들은 정말 핸드폰을 좋아한다.

술래잡기를 하자고 해서 숨으라고 하고는 방에 들어가서 한 10분쯤 잤나. 작은 누가가 들어오더니 이런다. 아이가 애타게 찾기를 기다리고 있으니 안 울리려면 언능가서 찾아주라고. 쓰린 속에 다른 방으로 갔더니 혼자 이불을 뒤집어 쓰고 10분 넘게 가만히 있었던게 아닌가. 그 때묻지 않은 순수함에 티를 묻힌것 같아서 못내 미안했다. 계속 하자는걸 좀 쉬었다 하자고 했더니. 언제까지 쉴거냐고? 작은 바늘이 11에 오면 다시 하는 거냐고. 그래서 그러자고 했다. 참고로 그 때 시간은 4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이었다. 그길로 나는 깊은 수면에 빠져들 수 있었다.

난 아이들을 참 싫어했다. 모든게 의존적인 그놈들이 귀찮기만 하다고 느꼈었다. 물론 나도 어느 누군가의 아이였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 녀석들을 보면서 묘한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자신의 존재감을 극한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아이를 가지는 일이 아닐까란 생각. 

이 녀석들도 언젠가는 대학도 가고, 군대도 가고,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겠지? 그들이 사는 세상은 지금보다는 좀 더 나은 세상이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봤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자식이었고, 또 언젠가는 누군가의 부모가 된다. 그렇게 세월의 수레바퀴는 쉬임없이 돌아가는게 아닐까?

때묻지 않은 동심을 키워줄 근사한 크리스마스 선물이 뭐가 있을지 찾고 있는 요즘이다.

덧) 글을 쓰고 전수연씨의 곡을 듣고 있자니 초등학교 1학년 그 때가 생각난다. 따스한 초여름이 다가오는 날이었던 것 같은데, 난 학교에서 채점된 받아쓰기 시험지를 들고는 하교하는 중이었다. 학교 운동장을 나와 교문으로 가는 동안 무지하게 갈등했다. 이걸 찢어버릴 것인지, 들고갈 것인지 말이다. 참고로 그 때 점수는 100점 만점에 40점. 죽도록 고민한 나는 교문에 채 도착하기도 전에 그 시험지를 갈기갈기 찢어서 버렸다. 이 사건이 내가 기억하는 내 인생에서의 첫 번째 고민이다. 결과야 어떻든 나는 떳떳한 선택을 하지는 않았다. 그 때 부터 난 쭉 고민의 바닷속을 거침없이 항해하기 시작했고, 늘상 비슷한 답을 선택했던 것 같기도 하다. 바램이 있다면 앞으로는 좀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은 학교 생활 기록부에 잠만 잔다고 적었고, 어머니는 기겁을 했었다. 사실 난 실제로 잠만 잤었기에 할말은 없었다. 그 사람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ㅋㅋ~

@codem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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