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codemaru · February 25, 2011 · 11 min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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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로 형의 역작, 유일하게 젤로 형의 서명을 가진 피에타.

원래 마리아 가슴팍에 서명이 있다는데 복원한거라 그런지 안보인다.

20대에 만든 작품이라는데 참 천재는 천재다.

6.26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로마의 양대 코어중 하나인 바티칸 투어를 가는 날이다. 7시 30분에 P가 깨운다. 7시 50까지 떼르미니 역에 가야 투어를 할 수 있다는데… … 씻지도 않고 머리에 물만 묻히고 세수를 하고 나왔다. 빵을 들고 역으로 가려다, 공속으로 먹고 가기로 했다. 실수였다. 떼르미니 역에 도착하니 8시쯤 되었다. 24번, 1번 플랫폼 어디에도 한국 사람들 무리가 보이지 않았다. 일단 바티칸으로 가기로 했다. 지하철로 바티칸으로 이동해서 출구로 나가니 자전거 여행 투어가 보인다. 잽싸게 합류했다. 26세 위로 25유로, 26세 이하 20 유로 였다. 학생은 더 쌌다. 돈을 내고 투어에 참가했다. 가이드 투어는 이번이 첨이다. 무선으로 가이드 말을 들을 수 있는 장치를 받고 바티칸으로 향했다. 지하철 역을 나와 바티칸 성벽으로 나오니 8시도 이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개미처럼 행렬을 지어있었기 때문이다. 그 뒤에 20여명이 추가로 선다. 기다리는 동안 가이드가 이런 저런 전체적인 설명을 해준다. 주로 미친젤로와 라파엘로 이야기다. 가이드가 설명을 재밌게 해서 참 좋았다. 입국하고 박물관 표를 사고 그늘로 이동해서 2시간 가량 미켈란젤로란 사람과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투어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이다. 동시에 미켈란젤로란 한 인간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미켈란젤로는 89세 까지 살았으나 결혼을 하지 않았다. 여러가지 학설이 있으나 그가 심각한 외모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코는 선배에게 맞아서 비뚫어 졌으며, 5년간 천지창조 벽화 작업을 하느라 등이 굽고, 얼굴 안면이 손상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회화관으로 입장했다. 가이드가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로 구분지어 설명을 해주었다. 중세는 원근감, 표정, 동작, 명암이 없는 것이 르네상스는 표정, 동작, 명암, 원근이 살아 있으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이, 바로크는 르네상스의 이상적임을 타파(종교개혁)하고 사실적인 그림을 그린 것이 특징이라 했다. 그리고 인물 도상학을 조금 배웠는데 흥미로웠다. 열쇄 가진건 베드로, 털옷 세례자 요한, 이런식이었다. 하지만 성경의 전체적인 내용을 모르는지라 그림 내용은 지루했다. 점심시간, 햄버거(완전 구리다)를 먹고 인증샷 좀 찍고 2시 50분 부터 오후 일정을 시작했다.

조형관에 가서 동상을 보고 관련 신화 설명을 들었다. 재밌었다. 그리고는 라파엘로의 역작 아테네 학당을 보았다. 아테네 학당은 워낙 유명한 작품인만큼 나도 알고 있었다. 실제로보니 무지 크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가이드가 그림 속에 있는 라파엘로가 어딘지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얼굴이 그가 존경하던 다빈치로 중간에 최후의 심판을 보고 미켈란젤로를 그려 넣어 좌우 대칭이 깨졌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후에는 드디어 소성당에 있는 미친젤로의 걸작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을 보러갔다. 성당 내부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구불구불한 긴 통로를 통해서 가야 했다. 제법 멀었다. 가이드가 드디어 마지막 입구 앞에서 인원 점검을 하고 주의 사항을 설명한 다음 입장했다. 두둥. 들어가니 내부에도 정말 사람이 많았다. 가이드가 미친 젤로의 자서전에서 찬장화를 제일 잘 볼 수 있는 곳을 언급해 놓았다면 쭉쭉 들어오라고 했다. 중간쯤 계단에 앉아서 올려다보니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제일 유명한 아담의 탄생, 신과 손가락을 닿고 있는 그 부분이 딱 한눈에 들어왔다. 정말 웅장했다. 가이드의 말처럼 한 인간이 만들었다고 믿기에는 실로 대단한 작품이었다. 최후의 심판과 천지창조는 벽을 기준으로 닿아 있었다. 경외심이 절로 생기는 작품이었다. 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열정, 노력, 피와 땀을 느낄 수 있었다. 미친 젤로가 나에게 묻는다, 너 한번이라도 나처럼 미쳐본 적이 있냐고. 그는 거의 5년이란 시간을 그가 좋아하는 조각도 아닌 그림을 그리는데 바친 사람이다. 투입된 노력과 고생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 거대함, 웅장함, 또 그런 작품을 만드는 그의 노력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동시에 오만한 나에게 속죄의 시간이 되기도 했다.

좀 더 작품을 감상하고 싶었지만 가이드 투어의 특성상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이었다. 나탈리가 그렇게 꼭 가보라고 노래를 불렀던 싼 삐에뜨로. 입구에서 설명을 들은 다음 입장했다. 근데 바로 옆으로 들어가면 되는데 실수로 출구로 나가 버렸다. 다시 들어오려니 가드가 안된다고 한다. 다시 입구로 가서 들어오란다. 한참을 실갱이하다 다시 입구로 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비까지 온다. 뛰어뛰어 다시 성당으로 들어갔다. 성당안은 일단 컸다. 세계에서 제일 크다는데 오죽하겠는가? 근엄한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입구에 미친 젤로의 역작 피에타가 있었다. 피에타는 마리아가 예수의 죽은 시체를 들고 있는 작품으로 우리말로 하면 비탄, 영어로 하면 pity가 된다고 했다. 원래 가까이서 볼 수 있는데 미친 x가 망치로 다 때려 부수는 바람에 유리벽을 통해 멀리서나 겨우 볼 수 있었다. 젤로의 서명과 상세한 근육을 표현한 모습을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다음으로는 베드로 성인의 무덤을 구경했다. 정말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인증샷을 몇 개 찍고는 나왔다. 나와서 만나기로 한 분수대로 가니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가이드가 끝으로 베드로 광장에 대해서 설명했다. 딱봐도 베드로 성당과 광장을 공중에서보면 열쇠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건 원래 그렇게 설계된 것이 아니라 증축하다보니 그렇게 된거란다. 과연 그럴까? 광장에서 인증샷 몇 장 찍고 해산했다. 가이드가 괜찮은 아이스크림 집, 올드브릿지를 갈켜줘서 1.5유로 짜리를 하나 사먹었다. 그냥 아이스크림이었다. 알바 애들이 한국말을 너무 잘해서 조금 놀랐다. 뭐 줄까라길래 농담삼아 아무거나 이랬는데 알아들었다. 헐킈. 메트로 타고 떼르미니로와서 숙소로 갔다. 씻고 밥먹자는게 피곤했는지 씻고 자버렸다. 인나니 11시. 걍 계속 쭉 잤다.

@codem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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