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다큐멘터리를 한 편 보았습니다. 2006년도에 MBC에서 방송된 인간의 짝짓기에 관한 내용을 담은 다큐멘터리입니다.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 제목이 “일부일처 – 속거나 속이거나”입니다. 내용이 참 재미있더군요. 그래서 여기에 일부 내용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비슷한 주제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꼭 찾아서 보시길 바랍니다. 다큐 내용도 지루하지 않게 꾸며져 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욤.
제가 가장 흥미를 느꼈던 부분은 일부일처를 중독이라는 관점으로 설명한 내용이었습니다. 두 가지 종류의 쥐를 가지고 실험한 내용이 나오는데 비슷한 쥔데 한 쪽은 일부일처를 무지하게 잘 지키고, 다른 한 종의 쥐는 방만한 생활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둘을 놓고 뇌 사진을 찍어서 비교를 해보니 일부일처를 잘 지키는 쥐의 뇌는 코카인에 중독된 것과 같은 상태였다고 합니다. 즉 한 명의 상대에게 완전히 중독된 것이죠. 이를 역으로 이용해서 일부일처를 하지 않는 쥐를 똑같은 중독 상태로 만들었더니 일부일처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사람의 바람끼를 통제할 수 있는 약을 만들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드립을 살짝 칩니다. 놀랍죠? ㅋ~ 저는 이제껏 연애를 뭐 7년 했다, 8년 했다, 이런 분들 이야기를 들으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긴 시간을 서로 사랑했을까, 라는 의문을 가졌죠. 그런데 중독의 관점에서 풀어보면 정말 쉽게 이해가 됩니다. 이건 좀 여담이긴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장기 연애의 또 다른 한 팩트는 관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이를 풀어서 ‘정이 들어서…’라고 이야기하죠.
또 다른 재미난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궁금해하는 사랑의 유통기간에 관한 내용입니다. 중간에 어떤 여성 학자가 말하는 내용에서 짧게 언급되는데요. 낭만적인 사랑의 유효기간에 관한 연구가 지금까지 딱 두 번 진행되었는데 둘 다 결론이 1-3년으로 났다고 하더군요. 그런 연구를 어떻게 했는지도 궁금하긴 하지만, 어쨌든 결론으로 나온 데이터는 의미있는 수치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보통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느낄 것 같기도 하구욤.
2부에서는 일부다처를 믿고 실행에 옮긴 분들을 인터뷰하기도 합니다. 거기서 일부다처로 살아온 한 여성 분이 그러더군요. 자기는 남편이 항상 자기 옆에 계속 있는 것이 너무 싫다고요. 어디론가 좀 가버렸으면 좋겠는데 일부일처의 생활을 한다면 항상 옆에 있으니 자기 시간은 하나도 가질수가 없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일부다처가 되면 자연스레 남편의 시간이 분할되니 그녀의 개인 시간은 보장되는 셈이었겠죠. 그런데 참 이런 생각으로 일부다처를 한다면 어처구니가 없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이 너무 불쌍하자나요. 맨날 쉬지도 못하고 돌아가면서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남편은? ㅇㅇ?
결혼 제도가 서서히 사라지면서 전통적인 형태의 가정이 해체되고, 새로운 가정의 형태가 등장하는 사례로 유럽권 국가들이 소개되는데요. 이것도 좀 흥미롭습니다. 4년 전 다큐임에도 유럽이 이렇게 자유스럽다는 사실에 좀 놀랐다고 할까요? 2명 중 한 명 꼴로 혼외 가정에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충격적입니다.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아이를 낳고도 결혼을 하지 않는 가정이 많다고 하더군요. 대부분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결혼을 굉장히 어렵게 내지는 중요한 문제로 생각을 하고 있어서 못한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파리에서 혼자 아이들을 키우는 싱글맘 인터뷰 내용이 조금 인상 깊었는데요. 10년 넘게 동거를 하는 남자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혼자 키우는데, 그녀가 말하길 아이들을 키우는 건 키우는 거지만 자기에게도 사랑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결국 사람은 누군가 의지할 사람이 필요하니까요.
끝나면서 ‘줌마넷’이라는 동호회(??) 분들이 모이셔서 담소를 나누는 장면이 나오는데 한 아줌마가 아이들을 모두 국가가 책임져 준다면 굳이 결혼이라는 제도가 있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라는 질문을 하더군요. 평소 저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아직 결혼 제도가 유지하고 있는 가장 큰 틀은 양육 때문이겠죠.
저는 개인적으론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서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두 남녀가 만나서 같이 모여 사는 것은 좋다고 생각하지만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점, 잘못된 선택을 바로잡기 위한 비용이 엄청나게 크다는 점. 우리 사회에 국한된 이야기이긴 하지만 결혼 후에 동반되는 각종 집안의 경조 문화가 x2가 아닌 ^2가 된다는 점 때문입니다. 앞서 파리 여성의 인터뷰처럼 누구나 의지할만한 반려자를 필요로하다는 생각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것이 그 답이라는 사실에는 회의이라는 것이죠. 제가 보기에는 결혼은 그걸 공고히 하는 제도라기 보다는 그것을 가로막는 허들같은 느낌이 더 많이 들더군요. 흔히 사람들이 하는 말처럼 결혼은 현실이니까요.
다른 관점에서 생각을 해보자면 이렇습니다. 앞서 쥐들의 예에서처럼 중독이 일부일처라는 제도를 유지하는 핵심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렇다고 했을 때 만약 그 중독의 개인차가 있다면 결혼이라는 제도가 중독성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정말 가혹한 제도가 아닐까라는 생각입니다. 최근에 읽은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라는 책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라는 제목의 단편인데요. 저자는 외모 지상주의를 타파하기 위해서 칼리라는 장치를 고안합니다. 사물을 보더라도 거기에 대한 감정적인 변화가 없어지도록 만드는 장치입니다. 뇌의 특정 부위를 억제시켜서 예쁘다, 못생겼다라는 판단을 못하도록 만드는 겁니다. 비슷한 장치가 이 중독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겠죠. 쥐 실험을 한 사람들이 생각한 것처럼 중독을 공고히 해주는 약물을 개발하는 것도 가능할 겁니다. 그 약을 사용한다면 약한 중독성을 가진 사람들이 결혼이라는 제도에서 문제를 일으킬 확률도 줄어들겠죠. 하지만 그런 것이 만들어진다면 과연 좋은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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