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세움 안에서. 저기서 구경했던 그 많은 로마인들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6.24
로마의 이튿날이 밝았다. 라스베가스 보이는 떠났다. 킴은 공항의 항공편 상태를 알아보러 나갔다. 나는 씻었다. 나탈리는 열차 티켓을 가지고 고민한다. 나는 아침을 언제 먹을지 고민한다. 나탈리에게 물으니 아침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분명 방 티켓을 끊을 때는 포함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쉣꿀이네. 37.5유로에 이뭐병… ㅠㅠ
이제 여행도 막바지다. 그러다보니 슬슬 기운도 빠지게 마련이다. 무엇을 느꼈는지 돌아본다. 그저 기념물 앞에서 인증샷 찍기에 바쁜 여행은 아니었나 하는 반성도 해본다. 앞으로 10년 무엇을 하며 살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못해본 것 같아 많이 아쉽다. 어쩌면 애초에 이번 여행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3일 밤이 남았다. 돌아가면 다시 모든 것이 현실이 되겠지. 휴~ 오래 쉰만큼 휴유증도 클 것 같은 걱정이 벌써 앞선다. 무엇을 생각했는지, 무엇을 느꼈는지가 없다. 현실로 돌아가는 게 싫은 건지도 모르겠다. 이건 뭐 refresh가 아니라 refree인듯한 느낌이. 가장 무서운 사실은 어쩌면 내가 방향을 잃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P가 킴과 함께 들어왔다. 밥 안먹냐고 물어본다. 인제 인나서 씻고 있었다고 말하고 공짜냐고 물어봤다. 그렇단다. 나탈리 멍미?… 내려가서 밥을 먹었다. 밥먹고 밖으로 나갔다. 일단 메트로 일일권을 끊었다(4유로). 그러고는 P 계획대로 치르코 마시오로 향했다. 예전에 대전차 경기장으로 사용된 곳이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 느낌은 그냥 횡한 운동장이었다.
진실의 입 쪽으로 걸어갔다. 햇살이 너무 강했다. 진실의 입에는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려고 줄을 서 있었다. 진실의 입에서 인증샷을 찍고 성당 안을 구경했다. 그냥 성당이었다. 나와서 치르코마시오 쪽으로 다시 걸어갔다. 햇살이 너무 강해서 사진 찍기도 빡쎘다. 중간에 그늘에 누워서 좀 쉬었다.
P가 다시 일정을 확인했다. 여기갈까 저기갈까 자꾸 묻기에 걍 콜로세움이나 가자고 했다. 걸어서 콜로세움까지 갔다. 중간에 목이 말라서 물을 2유로에 사서 마셨다. 콜로세움 줄은 제법 길었다. 12유로를 내고 입장했다. 내부는 외부보다는 좀 더 감동스러웠다. 크다. 오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컸다. 구경하고 나와서 밥을 먹었다. 떼르미니 가서 먹으려다 그냥 앞에 노점상에서 핫도그와 콜라를 사먹었다(9유로). 핫도그는 먹을만 했다. P는 피자를 먹었는데 맛이 없다고 했다. 그늘이 없어 먹기가 지랄맞았다.
먹고나서는 필라티노 언덕으로 갔다. 출구는 입장 불가로 막혀 있어서 옆길로 올라갔다. 그리로도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언덕을 한참 올라가니 작은 성당이 하나 있다. 뭔가 대단한 건줄 알고 가보니 산프란체스코 성당이다. 들어가니 조용한 음악이 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분위기가 매우 엄숙하게 느껴졌다. 근데 결국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시 내려와서 먼길을 걸어 필라티노 입구로 향했다. 제법 멀었다. 입구로 들어와서 화장실을 갔다. 왼쪽은 필라티노, 오른쪽은 포로 로마노였다.
일단 필라티노로 갔다. 언덕으로 올라가면서 사진을 찍었다. 계속 돌아보는데 정말 말도 안되게 컸다. 결국 아우구스투스 집까지 보고 모든걸 포기하고 포로 로마노로 향했다. 날도 더운데 그늘도 없어 정말 구경하기 힘들었다. 몸이 힘드니 마음도 힘들었다. 포로 로마노는 정말 그냥 인증샷 찍듯이 구경만하고 나왔다. 그나마 인증샷도 찍기가 힘들어 걍 멋대로 찍었다. 사진 찍는 것도 일이란 사실을 새삼 느꼈다. 이렇게 개념없이 구경했는데도 12시에 입장해서 6시에 나왔다. 너무 힘들어 집으로 와서 씻고 밥을 먹었다. P가 싸온 햇반, 신라면, 카레, 짜장, 고추장, 김으로 주방에서 만찬을 즐겼다. 정말 맛있었다. 먹고는 떼르미니 역으로 가서 수박과 자두를 사먹었다. 쩔었다. 힘들어 둘 다 집에와서 쉬다가 10시에 다시 나왔다.
스페인 광장으로 향했다. 역에 내려서 또 사람들 안가는대로 가서 개병신됐다. 공항 트레일같이 엄청 긴 걸 한 세네개 탔는데 밖으로 나가니 고속도로였다. 헐킈. 다시 원점으로 와서 사람들 많이 가는 곳으로 따라갔다. 자연스럽게 스페인 계단이 나왔다. 그런데 그저 그랬다. 야경이 쩐다고 했는데 구라였다. 인증샷 찍고 계단 끝에서 엘리베이터 타고 돌아왔다. 스페인 계단에 앉아서 맥주나 한 잔 할라고 찾아봤는데 진짜 아무거도 없었다. 3미터에 하나씩 편의점이 있는 우리나라는 정말 축복받은 세상이다.
나탈리 가는 날이라 맥주나 같이 마실겸 오는 길에 CONAD에 들려서 맥주를 네 병 샀다. 그런데 들어오니 둘 다 뻗어서 쿨쿨 자고 있다. 그래서 나가서 먹으려고 손씻고 나왔다. 아참 들오는 길에 공용 통장에서 180유로를 찾아 90유로씩 나눴다. 일단 숙박을 연장하기위해 리셉션으로 갔다. P에게 도와 달라고 징징거리던 여자 아이가 다른 한국 남자와 베드 버그로 싸우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찮게 인사를 하게 되서 넷이서 같이 맥주를 마셨다.
남자는 전공이 컴공이라고 했다. 헐. 졸업하고 취직하기 전에 마지막 여행을 하는 거라고 한다. 어디 취직했냐고 묻자 가산디지털 단지에 있는 LG전자라고 한다. 난 구로디지털단지에서 일한다고 반갑다고 했다. 친한 학교 선배가 그 LG전자에 다닌지가 오래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세상 참 좁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 아이는 취직이 안되서 유럽으로 나온 거라고 했다. 4월에 출국했는데 지금까지 여행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깜짝 놀랐다. 자기는 산전수전 다 겪었다면서 한국으로 돌아가면 모든 걸 다 용서할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스 폭동 때 사람들 죽는 걸 옆에서 보았다고 했다. 온갖 유럽 사태를 몸소 체험했다면서 푸념을 늘어놓았다. 좀 안되보여서 나는 유레일 분실 드립을 좀 쳐줬다. 그러니 사연 없는 사람이 없다며 너스레를 떤다. 그렇게 늦게까지 술마시고 이야기하며 놀다가 올라와서 잤다. 정말 피곤에 쩔은 하루였다. 자기 전에 P에게 말했다. 내일은 도저히 바티칸 투어를 못할 것 같다고, 모레 가자고. P는 한국 축구 응원을 하고 싶어서 내일 바티칸, 모레 응원을 하고 싶은 눈친데 양보해 주었다. 정말 피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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