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에서 인터라켄까지…

@codemaru · July 03, 2010 · 10 min read

6.18…

아침에 베른 역에 다시 갔다. 유레일을 재발급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였다. 안내원의 대답은 심플했다. 다시 사야 한단다. 저런. 그래서 옆에 있는 아이에게 리옹역에 전화해서 알아봐 줄 수 있냐고 하자 냉정하게 전화 번호도 모른다는 대답만 한다. 호텔로 와서 낙심하고 있다가 이왕 이렇게 된 거 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그래봐야 100만원 더 쓰는 것 아니겠는가?

계획대로 아인슈타인 생가로 향했다. kramgee(?) 49를 지도상의 49번인 줄 알고 완전 엉뚱한 곳으로 갔다. 산으로 올라 올라 가는데 이상한 공원 이었다. 도무지 이상해서 벤치에 앉아 있는 아저씨에게 물어 뽰더니 친절하게 가르쳐 주신다. 지도를 들고 있는 게 관광객 처럼 보였다. 공원에서 내려 오면서 곰있는데 구경하고, 시계 앞에서 인증샷 찍고 아인슈타인 생가로 향했다. 생가는 정말 생각보다 볼 게 없었다. 세기의 학자가 이런 곳에 살았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정말 좁았다. 내가 사는 원룸보다 좁았다. 어쨌든 6chf 내고 볼만하진 않았다. 윗층에서 E=mc^2을 말하는 아인슈타인 음성을 들었다는 정도. 내려오니 아랍계 여자 둘이서 물어본다. 아인슈타인 생가가 어떠냐고, 내가 대답했다. nothing to see. 루째른행 티켓은 35chf다. 덴장.

*여행 근 일주일 째, 3개국 째, 다시 나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무엇을 느꼈을까? 내가 이 여행에서 얻고 싶었던 건 무엇일까? 돌아가서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이 좋은 선택일까? 앞으로 10년은 뭘 하면서 살아야 하는 걸까? 그냥 단지 포토 포인트 앞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전부일까? 다른 건 무엇이 있을까? 답을 찾기란 쉽지않다.*

루째른 역에서 알프나흐슈타트행 유람선을 탔다. 25chf. 시간이 조금남아 카펠교를 구경했다. 나무로 만든 다리가 이렇게 오래 버틸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란다. 시간이 30분 밖에 없어 빈사의 사자상은 볼 수가 없었다. 다리를 건너 유람선 선착장으로 돌아와서 유람선을 탔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 유람선은 정말 운치있었다. 뷰가 작살이다. 호수는 바닥이 보일 정도로 물이 깨끗했다. 그냥 쩔었다. 알프나흐슈타트 역에서 Gibswil을 거쳐 인터라켄으로 갔다. 아, 유람선에서 어리버리한 한국인 남자를 만났다. P에게 길을 잘 모른다고 인터라켄까지만 따라가도 되냐고 했다. 조금 따라오더니 그는 결국 루째른으로 돌아갔다. 골든패스 파노라마 열차와 일반 열차의 차이는 크지 않았다. 창문이 크다는 정도?

인터라켄에 도착해서는 호텔에 짐을 풀고 퐁듀를 먹으로 갔다. 호텔 인포가 추천해준 베비스에 갔는데 정말 좋았다. 주인인지 알바인지 아저씨 쑈맨십이 쩔었다. 고기 퐁듀를 시켜놓고 어떻게 먹는지 몰라 점원에게 물어보자 샤브샤브처럼 먹으라고 하는 것 같다. 그러고 나서도 버벅대자 옆에 아줌마들이 웃으면서 어떻게 먹는지를 가르쳐준다. 초큼 쪽팔렸다. 몇 살이냐고 묻는 말에 30이라고 하니 굉장히 놀라는 눈치다. 어려 보인단다. 그러면서 묻는 말. 자기는 몇 살 처럼 보이냐길래 36정도는 돼 보이는데 이뿌게 twenty-six라고 서비스 해줬다. 고맙다고 악수를 청한다. ㅋㅋ~

아저씨가 스위스 전통 호른을 들고 나와 불어보라고 분위기를 조장한다. P가 나가서 불어 보았으나 제대로 된 소리는 나질 않았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사진을 찍어주지 못해 초큼 미한하다. P뒤에 시도한 사람들은 대부분 소리가 났다. 아저씨의 호른 연주가 이어지고 나서는 다들 의자위에 올라가라고 한다. 그러고는 춤추고 난리도 아니었다. 이어서는 유딩때나 했었던 기차 놀이(앞 사람 어깨를 잡고 길게 늘어져서 막 움직이며 노는 것)를 했다. 그리곤 계산하고 나왔다. 원래 그런건지 콜라 2개 값이 계산되지 않았다. 그래서 빛의 속도로 나왔다. ㅋㅋ~

나와서 인터라켄 시내를 돌아다니다 호텔로 돌아왔다. P가 나이트를 가보자는 말에 호텔 아래 나이트를 갔다. 우리나라 나이트같은 분위기는 아니고 호텔 펍에 약간의 퇴폐를 곁들인 분위기였다. 맥주 2개를 시켰다. 개당 무려 14chf. 뒤에서는 봉춤 쑈를 하고 그랬다. 옆에 우크라이나 여자가 말을 붙여온다. 그래서 이것 저것 노가리를 풀었다. 한국 교육과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했는데, 자기가 스위스를 굉장히 잘 안다며 베른이나 루째른을 가면 자기가 가이드를 해주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내가 이미 다 갔다 왔다고 하고는 다음은 이탈리아로 간다고 했다. 어쨌든 대화가 된다는 사실에 나도 초큼 놀랐다. 대화가 무르익을 무렵 녀석이 본색을 드러낸다(참고로 직업 여성임). 자기도 술을 마시고 싶단다. 딱잘라 말했다. 돈 없다고 ㅋㅋ~ 유레일 잃어버려서 기차 값에 돈 수억 쏟아부었노라고 ㅎㅎㅎ~ 그러자 즐거웠다며 악수를 청하고는 돌아간다. 이번 여행에서 일행이 아닌 단일 대상과 나눈 가장 긴 대화였다.

방에서는 스파를 못간 아쉬움을 욕조에서 달랬다. 욕조가 커서 무척 기분이 좋았다. 하룻밤에 200chf가 넘는 호텔이라면 이정도는 되야지. 암.~

아참 Gibswil에서 기다릴 때 배가 고파서 옆에 테이크아웃 가게에 가서 케밥박스에 맥주를 먹었다. 13chf에 먹을만 했다. 퐁듀는 34chf 였는데 밥과 감자튀김이 찌라시로 나와 둘이 먹을만한 수준이었다.

그렇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이렇게 멍청한 일정을 누가 짰느냐, 라는 소리가 들린다. ㅋㅋ~ 일정이 이렇게 된 이유는 딱 하나였다. 베른의 아인슈타인 생가가 너무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베른에서 유레일 분실 시에도 사실은 루째른에서 저 멍청한 일정대로 할 필요는 없었다. 좀더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쑨역(?)에서 유람선을 타고 인터라켄을 들어가는 방법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고 싶었으나 골든패스 파노라마 열차에 대한 환상과 기존에 일정을 저렇게 잡아서 P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알프나흐슈타트행 유람선은 환상이었다. 골든패스 파노라마 열차는 글쎄…

@codemaru
돌아보니 좋은 날도 있었고, 나쁜 날도 있었다. 그런 나의 모든 소소한 일상과 배움을 기록한다. 여기에 기록된 모든 내용은 한 개인의 관점이고 의견이다. 내가 속한 조직과는 1도 상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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