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 올바른 의사 결정과 조직 구성원의 감정, 그리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

@codemaru · January 12, 2015 · 16 min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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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평가의 계절이 돌아왔다. 사람이 사람을 평가한다는 게 참 우습지만 조직의 자원 분배라는 측면을 고려한다면 평가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모두가 평등하게 보상을 받는 사회주의 시스템의 말로를 우리는 똑똑히 보았다. 유토피아적인 퐌타지를 자극하지만 인간의 욕망을 거세한 다음 남는 것은 무기력감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조직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회색 빛깔 조직이 되지 않으려면 아주 단순한 사실, 조직을 위해 더 기여한 사람은 더 나은 보상을 받아야 한다, 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몇 해 전 여기에 관한 글을 하나 적은 기억이 난다. 한 3년 지났는데 지금 읽어봐도 참 공감이 간다. 그사이 내가 깨달은 한 가시 사실이 있다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지 않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특히나 조직이 커지면 커질수록 불가능에 가까워지는 것 같다. 지수 함수의 그것처럼 빠른 속도로 말이다. 100명, 1000명, 10000명이 되는 조직에서는 그 일이 얼마나 힘들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최근에 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보호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 다양한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했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보이도록 만들기 위한 작업들도 했다. 하지만 그런 작업들이 결코 순탄치는 않았다. 그 과정에서 더러는 유혹도 있었고, 회유도 있었고, 역설득도 있었고, 협박도 있었다. 참 이 조그만 조직 사람들을 설득하기도 쉽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나 좋자는 것도 아니고 다 잘되자는 건데 말이다. 물론 그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없어진다고 우리가 망하진 않을 것이다. 단지 엄청나게 불편하고 느려지고 바보 같아질 뿐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난 최근의 이런 경험을 통해서 한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대부분의 조직에서 조직 구성원들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버리는 이유는 그들이 바보여서도 아니고, 그들이 정치적이어서도 아니고, 단지 배를 찢어버리는 게 그들의 삶을 더 편안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란 사실이다. 마치 한약이 몸엔 좋지만 입에 쓴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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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B와 D 사이의 C다”라고 장 폴 사르트르는 말했다. B는 탄생을(Birth), D는 죽음을(Death), C는 선택을(Choice) 나타낸다. 우리 인생은 매 순간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의 합이 누군가의 인생이라는 말이다. 조직도 틀리지 않다. 현재 어떤 조직의 상태는 그 조직의 설립 이후 지금까지의 의사 결정의 총합이다. 그래서 올바른 의사 결정은 조직의 생존을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특히나 작고 힘없는 조직의 경우에는 더 그렇다. 왜냐하면 여분의 버퍼가 없기 때문에 잘못된 의사 결정 한번으로 몽땅 도루묵이 돼 버릴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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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의사 결정이 조직의 생사를 결정할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조직 입장에서는 올바른 의사 결정을 내리는 것 자체가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따라서 올바른 의사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이야 말로 조직의 관점에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조직 구성원에게는 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그다지 매력적으로 비춰지진 않는다. 올바른 의사 결정이 이해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새로운 제품을 만들자는 의사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해보자. 새로운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 신규 인력을 충원한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기존 조직 구성원만으로 새로운 제품을 만든다면 당연히 그 제품을 추가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개발팀 입장에서는 반대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당장 자신들의 일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들의 시각에서는 새로운 제품 개발이 올바른 의사 결정이라 하더라도 탐탁지 않게 생각되는 것이다.

주말에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회사 제품이 탑재된 게임과 관련한 취약점 정보가 공유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이미 그 취약점은 패치된 것이었다. 월요일 출근해서는 패치 담당자들에게 패치 요청을 이야기한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 벌어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패치 담당자 입장에서는 일견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 갑자기 추가적인 패치를 해야 하는 일이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미 패치된 취약점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은 그 사이트의 업데이트가 쉽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더 골치아픈 일이 생긴 것이다. 그러니 취약점이 있어서 패치를 해야 한다는 누가봐도 토를 달기 힘든 의사 결정 앞에서도 기분은 썩 좋지 않다.

분석팀에서 해킹툴을 분석하다 취약점을 하나 찾았다. 런 타임에 결정돼야 하는 CRC가 링크 타임에 결정되도록 알고리즘을 만들어 둔 것이다. 물론 그 해킹툴은 이미 다른 로직을 통해서 차단이 되고 있다. 그걸 개발팀 담당자에게 가서 이야기를 한다. 이건 런 타임에 계산되야 효과가 있는데 링크 타임에 결정되니 효과가 없고 그래서 이런 취약점이 생긴다. 이 경우에 개발팀 담당자에 따라서 여러 케이스가 발생할 수 있다. 이 이야기를 이해 못하는 개발팀 담당자가 있을 수 있다. 얘가 또 왜 피곤한 이야기하지, 라고 생각하고 그냥 흘려 넘긴다. 이해는 하는데 그 해킹툴이 막힌걸 아는 담당자라면 이미 막혔는데 왜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답변하기도 한다. 그 개발자가 문제를 제기한 분석가보다 상급자라면 최악의 경우가 생길수도 있다. 니가 뭘 안다고 이래라 저래라야, 라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이랬든 저랬든 결국 모든 반응은 한 가지 지점을 가리킨다. 왜 나한테 와서 추가적인 일감을 만들어놓느냐는 것이다. 그 이야기의 옳고 그름이 중요한게 아니라 말이다.

이렇듯 대다수 조직에서의 올바른 결정이란 결국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다.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든다는 건 불편해지는 누군가는 그 의사 결정에 좋은 감정을 가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조직을 위해 지속적으로 올바른 의사 결정을 내리거나 제시하는 어떤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광역으로 질타를 받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왜냐하면 다양한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불편한 의사 결정의 희생양이 된 사람들은 그 의사 결정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자신의 일이 늘어나거나 상해버린 감정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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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는게 사람 심리다. 조직도 똑같다. 새로운 변화는 두렵기 마련이고, 굴러 가면 굴러 가던대로 굴러가려는 관성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게 편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본성이 그러니 올바른 의사 결정을 싫어하는 다수를 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분명한 하나는 다수가 외면하기 때문에 올바른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을 기피한다면 조직 내에는 그 누구도 좋은 의견을 제시하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다수가 불편해지더라도, 욕먹을 각오를 하고 그런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을 지지하고 보호해 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 조직도 한걸음 전진할 수 있다.

처음 소스 코드 저장소를 사용하자는 말에 직원들은 자신들의 실수를 감시하려는 목적이 아니냐는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를 했었다. 빌드 시스템을 만들 때에는 귀찮게 이런 걸 왜 만드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웹 지원 시스템을 만들 때에는 이런 게 필요하냐는 이야기를 들었고, 디자인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을 땐 니가 하라는 소리까지 들어서 직접 하기도 했었다. 레드마인을 쓰는 과정도 순탄치는 않았고, 최근에 슬랙을 사용하자는 이야기를 했었을 땐 어처구니 없게도 대화를 감시하려는 목적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었다. 안드로이드 버전을 만들 땐 이런 건 돈도 안되잖아요, 라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돈을 벌고 안 벌고는 니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는 말을 수도 없이 했었다. 돌아보면 지금은 당연한 것들이지만 그 어떤 것도 쉽지 않았다. 당연한 것들이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도 수도 없이 많다. 그래도 그나마 나는 권한이 있기에 쉬웠다.

일 더하기 일은 이다. 이렇게 말하든 저렇게 말하든 일 더하기 일은 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일 더하기 일은 이라는 사실을 말했다는 게 중요하지 그걸 이렇게 말했느냐 저렇게 말했느냐가 중요하지는 않다. 사람에 따라서는 장황하게 말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간략하게 말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자신의 기호에 맞다 안 맞다가 중요한게 아니다. 그 이야기를 한 사람이 자신보다 직급이 높은지 낮은지가 중요한 것도 아니다. 제일 중요한 건 그 사람이 말한 컨텐츠가 옳으냐 아니냐가 중요하다. 적어도 옳다면 그 사람 말을 진지하게 들어줄 필요가 있다. 지금 당장 실행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래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 불편함을 만드는 바로 그 사람이 당신의 배를 채워주는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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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미리부터 전사하겠노라는 말은 하지만 막상 적의 칼날이 눈앞에 닿으면 목 자르는 형틀이 뒤에 있더라도 도망쳐 버려서 죽을 수 없게 됩니다. 그것은 사와 민이 죽을 수 없어서가 아니라 위에 있는 자가 할 수 없게 했기 때문입니다. 입으로는 상을 준다 하고 주지 않으며 처벌한다고 말하고는 실행하지 않아 상과 벌이 확실치 못하기 때문에 사와 민이 죽어 주지 않는 것입니다.

– 한비자

@codemaru
돌아보니 좋은 날도 있었고, 나쁜 날도 있었다. 그런 나의 모든 소소한 일상과 배움을 기록한다. 여기에 기록된 모든 내용은 한 개인의 관점이고 의견이다. 내가 속한 조직과는 1도 상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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