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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먹고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어쩌다가 나왔는지 by accident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별 일 아닌 일이었지만 뭔가 재미있는 구석도 있는 것 같아서 여기다 옮겨 적어 본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한 독일 업체에서 우리쪽으로 아래와 같은 내용의 문장이 포함된 메일을 한 통 보냈다.
we found out by accident that Xigncode is writing logs on the Live Server.
우리는 XIGNCODE가 라이브 서버에서 로그를 기록하는 것을 우연히 발견했다.
그걸 본 우리쪽 커뮤니케이션 담당자가 accident 부터 끊어서는 아래와 같은 질문을 보냈다. 이게 사고/사건이라니 무슨 의미냐고 재차 질문을 한 것이다.
accident that Xigncode is writing logs on the Live Server.
XIGNCODE가 라이브 서버에서 로그를 기록하는 사건(?!)
그랬더니 업체쪽에서는 사고가 있었다는 말이 아니라 by accident를 구글 번역기를 돌려서는 이게 우연히라는 영어 표현이라는 답장을 아래와 같이 보내왔다.
“By accident” is an expression in English language. Google translation says it means임의in Korean language.
“by accident” 영어에 있는 표현(숙어)이다. 구글 번역기는 그것의 의미가 한국말로 임의라고 나에게 말해주었지.
커피를 마시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나는 핸펀으로 그 메일을 검색해서 살펴보고는 이걸 어떻게 이렇게 해석해서 재차 질문할 수 있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곤 이 이야기를 전해준 직원에게 네이버 영어 사전에서 by accident를 찾아서 보여주며 이거 아니냐는 말을 건냈다. 그걸 들은 친구는 동료를 보호하기 위해서 accidently라고 썼어야 명확했을 거라는 힘겨운 실드를 쳤다. 한참을 듣고 계시던 사장님께서 한 말씀 덧붙인다. 야, 그게 표현이 뭐가 그리 중요하니 적당히 알아듣고 해달라는대로 처리해주면 되는 거잖아. 신택스가 아니라 시맨틱에 집중하라는 말씀.
#1
커피 마시고 올라와서는 친구 녀석이랑 톡질을 하다가 이 이야기가 다시 올라왔다. 영어 선생님을 하는 그 친구한테 우리 회사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 친구는 내가 하는 말을 잘못 알아들어서는 내가 “we found out by accident that Xigncode is writing logs on the Live Server.”라는 문장을 썼다고 이해를 했다. 친구왈 “맹구야, 동사하고 목적어 사이에 부사가 있잖아”라는 이야기를 한다. “we found out that Xigncode is writing logs on the Live Server by accident.”라고 써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다시 네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블라블라블라 긴 이야기를 돌고 돌아 사건의 전말을 전달했다. 친구왈 독일애들 그렇게 안 봤는데, 똑똑하지 않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난 걔들 입장에서도 외국어라는 말을 덧붙였다.
#2
심심해서 부사의 위치를 찾아봤다. 머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영어 선생님인 놈이 틀릴 일은 없다. 부사는 동사와 그 동사의 목적어 사이에는 쓰지 않는 거란다라고 친절히 알려준다. 돌고 돌고 돌아서 다시 실드를 쳤던 직원 말을 재차 실드를 쳐보자면 “we accidently found out that Xigncode is writing logs on the Live Server.”라고 썼어야 한다는 말이었을 것이다.
명확해야 한다는 관점만 놓고 본다면 업체간 공식적인 커뮤니케이션에서는 그냥 부사 형용사 따위는 없는게 더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우연히 발견했든, 면밀히 뒤지다 발견했든, 발견한 사실이 중요하지 그걸 한정짓는 한정 문구는 그닥 중요한 내용은 아니니 말이다.
#3
별 일 아닌 이 사건이 재미있게 느껴졌던 이유는 동일한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 사람마다 너무나 극명하게 차이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떻게 by accident를 모르고 accident that이라고 끊어서 해석할 수 있냐는 관점을, 담당자를 실드 치던 직원은 by accident가 아니라 accidently를 썼으면 명확했을 거라는 입장을, 사장님은 by accident든 accidently든 알아들었으면 적당하게 조치를 취해주면 되지 문법 그거 따져서 무엇하겠느냐는 말씀을, 영어 선생님인 친구는 미개인도 아닌 우리가 21세기에 어떻게 동사와 목적어 사이에 부사 따위를 쓸 수 있지라는 반응을 보였다. 하나 같이 다 틀린 말도 아니고, 딱 하나를 집어서 이게 정답이라는 입장도 없다.
#4
임백준씨는 한 칼럼에서 “버그는 프로그래머의 숙명이다. 김밥을 마는 손에 밥풀이 묻는 것처럼, 비트와 바이트를 만지는 손에는 버그가 달라붙는다.”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퍽이나 멋진 표현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말이 비단 프로그래머에게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영어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직원들도 소통을 하다보면 실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루에도 몇 통씩 영어로 메일을 읽고, 쓰고, 영어로 메신저질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실수할 때도 있는 법이다. 그걸 두고 by accident를 모르고 accident that으로 끊어서 해석을 하냐고 뭐라고 한 건 아닌지라는 생각에 괜스레 미안해졌다.
언어는 불완전하고 커뮤니케이션은 어렵다. 상황은 복잡하고 입장은 다양하다. 이런 생각들이 머리속을 파고드니 그냥 우리가 죽자살자 집착하는 모든 일이 위에서 쳐다보면 죄다 우스워 보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떠오른 법정 스님의 시 한 수.
오해 – 법정
‘나는 당신을 죽도록 사랑합니다’라는 말의 정체는
‘나는 당신을 죽도록 오해합니다’일지도 모른다.
누가 나를 추켜세운다고 해서
우쭐댈 것도 없고,
헐뜯는다고 해서 화를 낼 일도 못 된다.
그건 모두가 한쪽만을 보고 성급하게 판단한
오해이기 때문이다.
오해란 이해 이전의 상태가 아닌가.
문제는 내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달린 것이다.
실상은 말 밖에 있는 것이고
진리는 누가 뭐라 하든 흔들리지 않는다.
온전한 이해는 그 어떤 관념에서가 아니라
지혜의 눈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 이전에는 모두가 오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