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이스트

@codemaru · April 07, 2010 · 7 min read

한 저널리스트가 노숙자 한 명을 만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 노숙자는 저널리스트의 통찰력만큼이나 많은 사연을 가진 거리의 악사였죠. 줄리어드 음대까지 갈 정도로 총망받는 재능의 소유자였으니까요. 이 책은 줄리어드 음대까지 간 그가 왜 거리의 노숙자가 되었는지, 또 저널리스트와의 새로운 관계를 통해서 어떻게 그 현실을 극복해 나가는지에 대한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런 엄청난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다 읽고 나면 뭔가 허한 느낌이 조금 듭니다. 솔직히 픽션이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후한 평을 주기도 힘들 것 같네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단지 일방적인 글이거든요. 그가 거리의 악사가 된 이유도 저널리스트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설명하고, 조사하며, 그가 치료되고 있다는 것도 저널리스트의 입장에서 서술됩니다. 진짜 주인공의 이야기는 없다는 점이죠. 물론 주인공의 정신적인 상태가 일관된 이야기를 할만한 점이 아니라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렇다면 그런 상태가 되었을 때 이런 책이 나와야지 좀 더 의미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듭니다.

책을 읽으면서 마주치게 되는 정말 기분 나쁜 불편한 진실은 계급이 없다고 느끼는 요즘 사회의 숨어있는 계급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 노숙자인 나다니엘씨는 솔직히 다른 수만 명 아니면 수천만 명의 노숙자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글을 보면 다른 노숙자들보다 더 공격적이며, 더 보호 시설에 반감이 많죠. 하지만 자신의 친구 내지는 돌봐주는 사람이 저널리스트라는 점이 미국이라는 사회 속에서도 정말 많은 장점으로 작용합니다. 책을 읽는 내내 그런 점들이 눈에 거슬리더군요.

경찰서 한 번, 법원 한 번, 병원 한 번만 가봐도 누구나 느끼는 사실입니다. 그런 시설들에 힘있는 권력자 내지는 그 보다 더 윗선에 아는 사람이 있을 때 일 처리가 얼마나 편해지는 지를 알고 나면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죠. 요즘 천안함 사태로 불거진 이슈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연일 천안함에 관한 뉴스가 나오다 보니 자연스레 부당한 보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사실은 천안함 이전에도 군대에서는 부지기수로 죽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심지어는 먼지로 감기에 걸려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언론의 이슈에 나올 리는 만무하고 충분한 보상을 받기도 힘들 겁니다. 더 솔직히 말해서는 언론에 이슈화할 정도에 아는 사람이 있고, 충분한 보상이 지급될 만한 위치였다면 먼지로 인한 감기로 죽을 지경까지는 가지 않았을 겁니다. 세상이 좀 더 편평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물론 쉽지는 않은 일이겠죠. 제가 아직 가진게 없어서 그런 입장인지도 모르겠군요. ㅎㅎ~

나다니엘은 자신이 은퇴할 나이가 됐을 때 겨우 열다섯 살이 될 딸 때문에 걱정할 필요도 없다. 컴퓨터가 다운되는 일도 없고, 건강관리기구에 6백 번씩 전화해서 진료비 지불에 대해 고함을 질러댈 필요도 없다. 은행에 전화해서 누군가 내 신용카드를 훔쳐가서 3천 달러의 손해를 봤다고 신고할 일도 없고, ‘철저한 조사’를 실시해 내가 거짓말한다고 판단한 누군가를 목졸라버리겠다고 소리 지를 일도 없다. 나다니엘은 이 모든 서류에서 완전히 제명되어 있다. 그는 사회 보장 카드도 없고, 운전 면허증도 없고, 주소도 없고, 사망 선택 유언도 없고, 직업도 없고, 깍아야 할 잔디 밭도 없고, 답례 전화를 걸어야 할 일도 없고, 은퇴 계획도 없고, 자신이 정한 규칙 외에는 아무런 규칙도 없다.

무소유를 강조하신 법정 스님이 생각나는 구절이었습니다. 법정 스님 이야기대로 소유하지 않으면 고민할 것도, 걱정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 마음 씀을 만들어 낼 대상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함으로써 너무 많은 고민에 싸여 사는 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인가 뉴스를 보니 우울증 치료를 받는 사람이 꾸준히 늘어서 처음으로 50만 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우리의 정신이 이렇게 혼란스러워진 것도 어쩌면 우리가 더 열정적이어서가 아닌 너무 많은 욕심을 가지고 너무 많이 소유하려고 해서 그런 건 아닐까요?

@codem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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