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플갱어란 자신과 똑 같은 사람을 만나는 것을 말한다. 주제 사라마구 할아버지의 책, 도플갱어 또한 그러한 모티브를 가지고 만들어진 소설이다. 평범한 역사 교사인 주인공, 테르툴리아노 막시모 아폰소는 어느날 영화 속에서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을 보게 된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단역 배우, 안토니오 클라로다. 《도플갱어》는 이 둘이 만나서 겪게 되는 정체성의 혼란과 그것들이 해소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끊임없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무엇이 우리를 자기 자신으로 만들어 주는 것일까? 무엇이 우리의 정체성을 증명해주는 것일까? 우습게도 소설 속 테르툴리아노 막시모 아폰소에게는 어머니가 키우는 개 이름이 그러한 역할을 한다.
그는 짤막한 메시지를 남겼다, 잊지 마세요, 지금 제 이름은 안토니오 클라로예요. 그러고 나서 그는 마치 현재 논의 중인 불안하고 변덕스러운 정체성을 확실하게 밝혀줄 중대한 증거를 방금 발견한 사람처럼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엄마가 기르는 개 이름은 토마르크투스예요. 어머니가 여기에 나타나더라도 그가 어머니에게 아버지와 조부모와 이모, 고모, 삼촌들의 이름을 줄줄이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가 무화과나무에서 떨어져 팔이 부러진 일이나 처음으로 사귄 여자친구, 또는 그가 열 살 때 집의 굴뚝이 번개에 맞아 부서졌던 일을 이야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카롤리나 막시모 아폰소가 자기 아이가 바로 눈앞에 서 있음을 확신하는 데는 놀라운 모성 본능이나 과학적이고 확실한 DNA 검사가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개의 이름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작가는 정체성 문제의 심각성을 주인공을 통해서 간접 표현한다. 테르툴리아노 막시모 아폰소와 안토니오 클라로가 처음 만났을때 테르툴리아노 막시모 아폰소는 총을 들고 가지 않았다. 그는 단지 서로 똑같이 생겼다는 것만 확인하고는 떨어져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문제를 간단하게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을 겪은 후 마지막 장면에서 테르툴리아노 막시모 아폰소는 자신과 똑 같은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는 전화를 받고는 권총을 챙긴다. 그게 얼마나 비극적인 일이라는 것을 깨닳은 것이다.
나늘 나로 만들어 주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가진 껍데기일까? 내 속에 든 알맹이일까?
아니면 그런 모든 것도 아닌 단지 다른 이들의 기억일까?
아마 그 모든 것 중에 하나라도 잘못된다면 나는 나란 존재가 아닌지도 모른다.
기억에 남는 문장,
혼돈은 해석되기를 기다리는 질서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