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루키 아저씨 책들을 좋아한다. 친구 중에는 하루키 아저씨 책에는 xx가 너무 많이 나와서 저속적이라 말하는 놈들도 종종있다. 물론 그런 것도 없잖아 사실이긴 하지만 이랬든 저랬든 하루키 아저씨 책은 잘 읽히고 재미있다. 거기다 이 책, '승리보다 소중한 것'은 요즈음 내가 생각한 고민들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조금은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일본 선수는 철봉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걸까. 어쩌면 피곤했는지도 모른다. 본인도 떨어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듯. 내말이 위로가 되지는 않겠지만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일어나는 법이다. 사람은 그렇게 악몽에 견디는 법을 배운다. 나도 배웠다. 다만 TV로 중계되지 않았을 뿐이다.
한번쯤 떨어져 보는 것이 좋다. 빠를수록 좋다. 크게 떨어져 볼수록 좋다. 이러한 경험이 있어야 훗날 크게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한번도 넘어지지 않은 사람이 그런 경우를 당했을 때 더 크게 다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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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것들은 20대에는 생각하지 않아도 될 문제였다. 다만 감독이 지시하는 대로 달리면 그만이었다. 연애를 할 시간조차 없었다. 다른 사람보다 빨리 뛰는 것만 생각하면 되었다. 하지만 다 지나간 일이다. 그녀는 어른으로서, 여성으로서, 일류 선수로서 그에 상응하는(경우에 따라서는 그 이상의) 책임을 지고 살아가야 한다. 이러한 생활은 당연히 그녀로부터 상당한 양의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아 간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체온을 빼앗듯이.
나이가 든다는 건 저런것 같다. 사회 초년생일때는 위에서 만들라는 것을 잘 만들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자질구레한 신경쓸 것도 많고. 더 이상 단순히 좋은 코드를 만드는 것이 나의 경쟁력도 아니다. 요즘은 나의 경쟁력이 멀까라는 생각이 든다. 설날에도 내려가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해보았지만 딱히 답은 없는듯.,,
우리는 모두, 거의 모두 자신의 약점을 껴안고 살아간다. 우리는 그 약점을 없앨 수도, 지울 수도 없다. 약점은 우리 존재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은 곳에 몰래 숨겨 둘 수는 있지만, 긴 안목에서 보면 그런 행위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일은 약점을 인정하고 정면으로 바라보며 자기편으로 만드는 것이다. 약점에 발목 잡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디딤돌로 삼아 스스로를 보다 높은 곳으로 나아가게끔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결과적으로 인간으로서의 깊이를 얻을 수 있다. 소설가든 육상 선수든 당신이든 원칙은 같다.
물론 나는 승리를 사랑한다. 승리를 평가한다. 그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기분 좋은 것이다. 하지만 그 승리 이상으로 '깊이'를 사랑하고 평가한다. 때로 인간은 승리하고, 때로 패배를 맛본다. 그리고 그 후에도 계속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누구나 약점, 컴플렉스, 트라우마 같은 것들이 한 두개 쯤은 있게 마련이다. 나이가 들수록 그런 것들은 더욱 고착화된다. 정면으로 바라보며 자기편으로 만드는 것이 어떤 건지 생각해본다. 동시에 '깊이'에 대해서도.
그녀와 헤어진 뒤 생각해 본다. 승리에 대해.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지급해야 하는 대가에 대해.
정의란 무엇인가. 나는 이 질문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무엇이 올바른가. 결국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세월이 흐르면 추는 기울어야 할 곳으로 기울게 되어 있다. 대부분의 것은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결정된다. 내가 흥미를 느끼는 것은 무엇이 대가로 지급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 하지만 우리는 공짜 점심을 정말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