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부모님과 함께 병원을 간 적이 있었다. CT 촬영 결과를 다른 병원에서 다시 판독하기 위해서였다. 단순히 CD에 들어있는 정보를 불러서 그 화면을 보고 소견을 들으면 되는 간단한 과정이었다. 그런데 찾아간 병원의 의사 분이 소프트웨어에 익숙하지 않아서 인지 2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정보를 불러오질 못하고 있었다. 급기야 옆에 있는 간호사에게 소프트웨어 사용법을 물어보기까지 했다. 답답한 마음에 옆으로 가서 컴퓨터 모니터를 잠시 쳐다보았다. 모르는 게 당연하겠다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 프로그램 화면은 마치 우주선 조종석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틀을 가지고 세상을 본다. 개발자도 그들만의 틀을 가지고 세상을 본다. 많은 개발자들이 범하는 가장 큰 오류 중에 하나는 사용자가 자신들만큼 똑똑하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실수가 잘 나타난 대화상자가 <화면 1>에 나와있다. 사용자는 단지 지하철의 최단 거리를 검색하고 싶을 뿐인데 그들에게 요구하는 사항은 너무 가혹하기 짝이 없다.
일반적인 사용자가 <화면 1>과 같은 대화상자를 만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여기서는 딱 두 가지 반응이 있다. 뒤도 보지 않고 확인 버튼을 누르는 사용자가 첫 번째이고, 매뉴얼에서 이 부분을 검색해보는 사용자가 두 번째이다. 첫 번째 사용자들은 이후 최단 거리 검색이 자신이 짐작한 것과 같은 결과가 나온다면 프로그램을 신뢰하고 지속적으로 사용한다. 반면 두 번째 사용자들은 매뉴얼을 읽어보고 자신이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 나온다면 지레 겁을 먹고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게 된다. 전자든 후자든 개발자가 대화상자를 디자인한 의도와는 맞지 않는다.
이러한 이야기가 비단 일반 사용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에 필자는 하드 디스크의 자료를 완전 삭제하기 위해서 관련 소프트웨어를 설치한 적이 있었다. 그 소프트웨어의 완전 삭제 설정 창이 <화면 1>과 같은 구조였다. 필자가 이해하기에는 모두 난해한 단어들이었다. 또한 도움말에도 구글 검색을 통해서도 관련 내용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필자는 그 소프트웨어를 바로 삭제해 버렸다.
주위를 돌아보면 특별한 기술이 없어 보이는 소프트웨어 임에도 꾸준히 사용자들이 찾는 프로그램도 있고, 뛰어난 기술력으로 무장한 것 같은 프로그램인데도 사용자에게 외면 받는 프로그램도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필자가 느낀 가장 큰 차이는 그 두 제품의 개발 시점의 차이였다. 전자는 사용자의 시점에서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후자는 개발자의 시점에서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다.
공명이란 고유진동수가 갈은 외력을 주기적으로 받아 진폭이 증가하는 물리 현상을 말한다. 소프라노 고음에 옆에 있는 유리잔들이 깨지는 영화 속 장면에서부터 일상 생활에서 흔히 사용되는 전자레인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곳에서 공명 현상을 찾을 수 있다. 단순한 물리 현상이지만 필자는 이 속에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그 중 하나가 역지사지의 정신이다. 때로는 컴퓨터는 잠시 잊고 사용자의 입장에 서서 고민을 해보는 시간을 가져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