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는 2000 포인트를 넘어서 고공행진을 하고 있고, 중국에 투자한 사람들은 경이적인 수익률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옆 집 아즘마도 주식 투자에 나섰고, 베스트 셀러 목록에서 주식 투자나 재테크 서적도 당당히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 바야흐로 투자 전성 시대인 것이다.
주식 투자니 재테크니 하는 책들을 보면 단골 손님으로 나오는 투자 원칙이 있으니, 바로 분산투자가 그것이다. 분산 투자란 자신의 자산을 한 군데 집중적으로 투자하지 않고 나누어서 투자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그 반대를 의미하는 말로 몰빵이란 말이 있다. 자신의 전체 자산을 한 군데 몽땅 투자하는 것을 의미한다. “왜 분산 투자를 해야 하죠?”라고 묻는다면 책에서는 한 바구니에 담긴 계란은 바구니가 떨어지면 몽땅 부서지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해준다. 너무도 직관적인 비유라 사람들은 더 생각해보지도 않고 분산 투자 이론을 철썩 같이 믿고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마치 수퍼마켓 진열대처럼 만들곤 한다.
툴바(Toolbar32)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메뉴 조차도 툴바로 만들어버린 엑셀(Microsoft Excel)팀처럼 사람들은 분산 투자의 가치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자신의 인생도 분산 투자를 한다. 아래 이력서는 이러한 분산 투자의 결과를 잘 보여주는 한 예다.
사용 가능한 언어: C, C++, Java, Visual Basic, C#, Delphi
이 이력서의 주인공은 C 시장이 사라져도 걱정이 없다. 자바도 조금은 할 줄 알기 때문이다. C# 문법도 어느 정도 알고 있기 때문에 자바 시장이 완전히 없어진다고 하더라도 걱정이 없다. 열거된 모든 산업이 사라지기 전까지 그는 안전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다. 대부분의 채용 담당자들은 ‘할 줄 아는 것이 많다는 것은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력서의 주인공인 철수를 만나보도록 하자. 철수는 컴퓨터 공학과에 입학하면서 C언어를 배웠다. 너무나 재미있었다. 철수는 열심히 C언어를 익혔다. 2학년이 된 철수는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일 년 동안 열심히 공부했음에도 주위 친구들보다 자신이 C언어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이 길이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 철수는 C++이라는 새로운 언어에 빠져든다. 그리곤 C++ 문법을 다시 열심히 익힌다. 열공한 철수는 C++ 프로그래머라는 이름으로 현업에 뛰어든다. 하지만 일은 하면 할 수록 어렵고, 주위에 자신보다 C++을 잘 다루는 사람은 너무도 많다. 철수는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자바 개발자들이 호사를 누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는 잘 다니는 직장을 나와서 자바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철수 이야기가 너무 작위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철수와 같은 선택을 하는 사람들을 너무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조금만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새로운 것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그러면서 변화에 잘 적응하는 종이 오래 살아남는다는 다윈의 진화론을 자신의 선택에 대한 근거로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변화가 아닌 회피다.
인생은 긴 시간 동안 자신에게 투자해 나가는 과정이다. 설령 그 과정 중에 조금의 실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투자 대상이 사라지진 않는다. 그래서 인생의 투자에 있어서는 몰빵이 분산 투자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다. 물론 이 몰빵에는 중요한 두 가지 조건이 전제된다. 첫째는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일에 몰빵을 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적어도 몰빵한 일에 있어서는 매년 발전을 이루어야 한다는 점이다. 좋은 말로 줄여 쓴다면 선택과 집중이 되는 것이다.
영어 책만 바꿔가면서 ‘Hello, Jane’을 반복하는 사람이 외국인을 만나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없다. 마찬가지로 프로그래밍 언어만 바꿔 가면서 ‘Hello World’를 출력하는 것은 현업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루 아침에 하늘에서 떨어진 비서 한 권으로 강호를 호령하는 내공을 얻는 이야기는 무협지 속에나 있는 것이다. 현실 세계에서의 내공은 산전, 수전, 공중전을 다 겪고도 살아 남은 자들에게 주어지는 아름다운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