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또한 노장 사상의 대표 주자 입니다. 하지만 노자만큼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죠. 저는 장자를 이 책에서 처음 접해 봤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 중에 장자에서 나온 것들이 꽤 있더군요. 우물안 개구리나 두번째 인용문인 혼돈칠규가 대표적입니다.
어느 날 장주가 나비가 된 꿈을 꾸었다.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어 유유자적 재미있게 지내면서도 자신이 장주임을 알지 못했다. 문득 깨어보니 다지 장주가 되었다. (조금 전에는) 장주가 나비가 된 꿈을 꾸었고 (꿈에서 깬 지금은) 나비가 장주가 된 꿈을 꾸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장주와 나비 사이에 무슨 구분이 있기는 있을 것이다. 이를 일컬어 물화라 한다.
굉장히 심오해 보이는 문장입니다. 사실 잘 이해가 되진 않아도 문장이 맘에 들더군요. 그래서 뽑아 봤습니다. 동양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내용이죠. 이 문장이 결국 나타내려고 하는 것은 장주와 나비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입니다. 장주와 나비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내용입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설명을 조금 인용하면 다음과 갈습니다. 모든 존재는 인과 과의 관계에 있으며 동시에 과와 인의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여러분은 배우는 제자의 입장에 있으면서도 또 가르치는 스승의 입장에 서 있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은 스승이면서 동시에 제자로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사물은 이이일의 관계, 즉 "다르면서도 같은" 모순과 통일의 관계에 있는 것이지요.
남해 임금은 숙, 북해 임금은 홀, 중앙의 임금은 혼돈이었다. 숙과 홀이 자주 혼돈의 땅에서 만났는데 혼돈은 그들을 잘대접했다. 숙과 홀은 혼돈의 은덕을 갚을 방도를 의논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모두 일곱 개의 구멍이 있어 보고, 듣고, 먹고, 숨 쉬는데 오직 혼돈에게만 구멍이 없으니, 시험 삼아 구멍을 뚫어 줍니다."
날마다 구멍 한 개씩 뚫어주었는데 칠 일 만에 혼돈은 죽어버렸다.
수능 모의 고사에 단골로 나왔던 지문이죠. 그때는 보면서 누가 썼는지도 왜 이런 말을 썼는지도 모른체 그냥 공부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남해 임금은 숙, 북해 임금은 홀 이런 식의 시작 자체가 그 때 저에게는 굉장히 난해하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 저는 이 지문이 다름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 잘못이다 라는 쪽으로 이해했습니다. 혼돈은 구멍이 없는데 그걸 이해못하고 똑같게 만드려다 결국 죽었으니 말이죠.
그런데 강의를 읽으면서 보니 그건 문장 자체의 의미일 뿐 실제 노자가 하려고 했던 이야기는 좀 더 근원적인 문제라고 느꼈습니다. 결국 위 이야기는 노장사상의 핵심을 표현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인위를 부정하는 것이죠. 노장 사상은 인위적인 것을 하지말고 자연 그대로 무위로 돌아가자고 주장하죠. 이 글에서 일곱 개의 구멍을 뚫는 행위가 인위 입니다. 사람이 멋대로 해버리는 것이죠. 인위의 결과는 글에서 나타난 것처럼 혼돈이 죽어버리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