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 K와 맥주 한잔을 하고 있는데 어머니께 전화가 왔습니다. 평소에 전화가 자주 오지도 않는데 무슨 일인가 했죠. 할아버지께서 위급하시다고 하더군요. 부리나케 술집을 나와서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4년전 친할머니 초상때도, 3년전 외할머니 초상때도 단지 서울에 있다는 이유로 한번도 임종을 옆에서 지켜봐 드린적이 없었습니다. 가슴 한 켠엔 늘 죄송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번엔 제가 부산에 있어서 임종을 지켜 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임종 장면은 늘 멋있습니다. 가시는 분께서는 늘 멋진 멘트를 하고는 무덤으로 가곤 하죠. 하지만 할아버지는 제가 병원에 도착했을때 이미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컴퓨터 모니터는 맥박이 30임을 저에게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의사는 앞으로 10분 정도 후면 사망하실 거라고 말해주더군요. 맥박은 그렇게 하염없이 천천히 0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때가 11시 30분이었습니다.
의사 말대로 10분 정도 지나자 맥박이 0이 되었습니다. 11시 40분. 이시간을 사망 시간으로 하기에는 준비가 너무 안되었나 봅니다. 그러자 의사는 20분 간을 더 심장 마사지를 해주었습니다. 신기한 것은 마사지를 하면 심장이 계속 뛴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2007년 1월 4일 12시 2분. 할아버지는 향년 85세의 나이로 떠나셨습니다. 심장 마사지 받는 것을 지켜봐 드리는게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습니다.
늘 하시던 상놈, 양반 이야기도, 돈 이야기도 하지 않으시고 덜그렁 거리는 심장 마사지 소리만 저에게 들려 주시고는 그렇게 떠나셨습니다. 죽음이라는게 참 초연하게 느껴지는 순간 이었습니다. 일제 시대부터 한국의 현대사라 불릴만한 역동의 시대를 거쳐온 할아버지의 삶도, 시간의 힘 앞에는 어쩔 수 없었나 봅니다.
핏빛조차 없는 싸늘한 주검을 바라보자니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디 할아버지께서 가시는 길은 편안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