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감자님의 과 개강파티, 신입생 맥주 1000cc 원샷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난 개인적으로 술을 잘마시지도 못마시지도 않는 편이다. 하지만 술을 못마셔서 고생해 본 기억은 별로 없다. 그래서 이제껏 그 술을 남에게 권하는 것이 좋은지 나쁜지에 대한 생각을 별로 해본적이 없었다. 권하면 마시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마리 앙또아네뜨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사람들이 밥이 없어 굶어 죽습니다." ... "음.. 왜 굶어 죽죠? 밥이 없으면 빵을 먹으면 되잖아요?" ㅎㅎㅎ~
언젠가 나에게 정말 힘든 술자리가 있었다. 난 그 때 아마 한주 내내 술을 마셔서 진짜 정말 더 이상은 못마실 지경이었다. 그런데 왜 그 술자리엘 또 갔냐고? 그것도 끌려갔다. ㅠ.ㅜ~ 하여튼 시작은 그랬다. 난 술을 못마시겠다고 선언했지만 그 무지막지한 권하기 문화에 억눌려 마실수 밖에 없었다. 여명808의 힘을 빌어 좀비 모드로 그날을 간신히 넘길 수 있었다. 아마도 그 날 이후로 난 남에게 술을 권하는 것에 대해서 심각하게 안좋은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를 겪은 사람이 비단 나 혼자 만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나라 술자리에선 어딜가나 이러한 현상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잘마시던 못마시던 일단 자기가 한잔 하면 상대도 한잔 하기를 바란다. 이런 문화가 가장 왜곡된 지점이 바로 대학생들의 신입생 환영회 내지는 오리엔테이션 자리다~ 사발로 술을 따르고 마시고,... 그러다 해마다 몇명씩은 진짜 골로 가고는 한다.
또한 이러한 문제가 술자리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어떤 모임의 어떤 자리에 가건 권하기 문화는 존재한다. 내가 노래 한 곡 부르면 상대도 한 곡 해야 하고, 내가 몸짓(율동)을 하면 상대도 해야 한다. 비단 술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말이다. 내가 이야기를 하나 하면 상대도 해야 하고, 내가 장기자랑을 하면 당연히 다음 사람도 해야 하는건 당연한 일이다.
과연 이렇게 전부 쉬쉬거리면서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런 문화가 어디서 왔을까?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개인보다는 우리를 강조하는 사상이다. 우리는 지금껏 개인을 희생해서 우리를 살리는 것이 좋다고 배웠다. 따라서 당연히 개인이야 어찌 되었건 그네들은 우리의 분위기를 맞추고 우리의 놀이 문화에 동화되어야 하는 것이다. 만약 그 개인이 그러한 문화에 동화되지 못한다면 그는 아웃사이더 외톨이가 될 수 밖에 없다. 철저하게 개인을 무시하는 처사다.
또한 우리 나라 사람들 특유의 단체 의식도 한몫한다. 다같이 해야 뭘 한다고 생각하는 점이다. 굳이 다같이 할 필요가 없음에도 다같이 하는 것을 좋아한다. 달리기를 해도 백명이 다같이, 담배를 펴도 백명이 다같이 핀다. 달리기를 하고 싶은 사람만 해도 충분히 재밌는 달리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무조건 백명이 다같이 해야 한다. 이야기가 이쯤되면 나오는 말이 하나 있다. 한두명씩 빠지면 아무도 안하게 된다고... 만약 그것이 고민이라면 그 항목은 스케쥴에서 빼는 것이 바람직하다. 적어도 한명도 즐겁게 하고 싶지 않은 그런 놀이를 굳이 끼워 넣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고감자님은 이러한 문제가 공동의 놀이 문화의 부재에서 온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동의 놀이 문화가 생긴다고 해서 이러한 문제가 쏙 하고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공동의 놀이 문화라는 것이 다른 사람 입장에서는 고역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공동의 놀이 문화 이전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 생각의 변화다. 그리고 한번 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자님께서는 인간관계의 핵심을 역지사지라는 네 글자에 담았다고 한다. 가슴깊이 새겨놓자! 역!!! 지!!! 사!!! 지!!!
인간의 눈이 인지할 수 있는 색깔의 수보다 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이 지구상에 같이 살아가고 있다. 글을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읽는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 하면 글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외향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성적인 사람도 있다. 말하길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듣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워크래프트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당신이 좋아하는 것들이 주류에 속해있다고 안심하고 있을 수도 있다. 아니 내지는 주류이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에 신경쓰지 않을 수도 있다. 먼 산 불구경 하듯이... 난 술 잘 마시는데 뭐~ 하지만 명심하자. 다음번 게임에선 당신이 좋아하는 것들이 전부 비주류가 될 수 있다는 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