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메멘토 모리를 되새기며 (feat. 교통사고)

@codemaru · September 21, 2025 · 11 min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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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여름방학 때 본가에 가다 큰 교통사고가 날 뻔했다. 고속도로 1차로로 주행 중이었는데 앞쪽에 사고가 나서, N차 사고가 나고, 또 내 앞차가 N+1차 사고를 낸 상황이었다. 나도 급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아슬아슬하게 사고가 나거나 직전에 멈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백미러로 본 내 뒷차는 거의 백프로 추돌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전에도 이런 종류의 사고가 두 번 난 적이 있었는데 나는 모두 멈췄지만 뒷차가 모두 내 차를 박았다. 그럼에도 여기서 나의 합리적인 조치는 최선을 다해 멈추고 뒷차가 박으면 그냥 사고를 당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애들이 타고 있어서 그랬는지 미친 짓을 해버렸다. 바로 핸들을 틀어서 옆차선으로 간 것이다. 물론 내가 옆 차선을 확인하고 차가 없고, 뒤에서 오는 차와의 거리도 안전하다고 판단한 다음 틀었다면 잘한 일이겠지만 나의 좌뇌는 그것을 확인하지 않았다. 아마 애들이 타고 있어서 사고는 피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의 무의식이 그 미친 짓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뇌는 확인했을지도 모르겠는 게 옆 차선은 다행히 비어 있었다. 다만 고속도로라 뒤에서 오는 차가 있었고, 그 속도가 맹렬했을 뿐이었다. 행운의 여신이 나를 아직 버리지 않은 것은 그 뒤에서 오던 아반떼 차량의 운전자가 빠른 속도에도 불구하고 제법 능숙하게 사고를 피해 주었다는 점이다. 그가 갓길로 주행해서 우리는 2차로 고속도로에서 잠시 3개 차선으로 주행을 했다. 이내 나는 미친 짓을 한 걸 깨닫고 1차선에 사고 난 차량들 사이로 다시 돌아와서 멈췄다. 내가 계속 주행을 했다면 아반떼도 사고를 피하기는 힘들었다. 왜냐하면 전방 갓길에는 그전에 사고 난 차량들이 또 널브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수십 초의 아주 짧은 순간에 이 모든 일이 벌어졌다. 얌전히 있었으면 사고가 나더라도 그렇게 큰 사고는 아니었을 수 있다. 하지만 핸들을 트는 바람에 재수가 없었다면 정말 큰 사고가 날 뻔한 것이다. 사고난 차량들 사이에 멈추고 보니 대략 전방 갓길에 널브러린 차량을 포함해서 6-7대 가량이 사고가 나 있었다.

운전을 시작한 이래로 이렇게 큰 사고가 날뻔한 경험은 처음이이었다. 그간 운이 좋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늘은 정말이지 조상님들이 도왔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전에 좋지 않은 소식을 전화로 들었던 터라 마음이 불편했는데, 그 순간 웃기게도 이 세상 모든 것에 감사함이 느껴졌다. 특히 그 아반떼 차량 운전자에게 너무 고마웠다. 당연하겠지만 남은 길은 졸졸 운전했고, 올라오는 길도 크루즈로 얌전히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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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억이 너무 강렬해서였을까? 여운이 며칠은 더 갔다. 그저 살아 있다는 게 고마웠고, 아이들이 무사해서 다행이었다. 그리곤 이내 깨달았다. 아등바등 스프레드시트 쳐다보며 전체 수익률이 몇프로니, 내부 수익률이 몇프로니, 금리가 어떠니, 고평가니, 저평가니 따져본들 죽음 앞에서는 다 부질없는 일이겠구나 싶었다. 인간의 가장 큰 모순이 천년만년 살 것처럼 굴다가 결국은 살아 보지도 못한 것처럼 죽는 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또 잡스의 말처럼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게 초연해진다는 말도 새삼 공감됐다. 우리가 집착하며 살아가는 그 모든 것들이 죽고 나면 다 무슨 소용일까 싶은 것이다.

그리고 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내가 죽는다면 마지막 순간에 나는 어떤 시간을 기억할까? 엄마가 꺼내주지 않던 세발자전거를 혼자 끌고 나오다가 화상을 입었던 날일까? 처음 두발자전거를 혼자 타게 된 날일까? 여름방학 내도록 매일 아빠와 해운대 바닷가에 갔던 날들일까? 처음으로 컴퓨터를 샀던 순간일까? 수능 시험 날일까? 첫 키스일까? 창업해서 제품을 만들면서 고생했던 날들일까? 애들이 태어나던 날일까? 운 좋게 투자로 큰 돈을 벌었던 순간일까? 아니면 실수로 전재산을 날렸던 때일까? 곰곰 생각해보니 모두 아닌 것 같았다.

내 인생을 돌아봤을 때 마지막에 기억할 것 같은 해들은 2000, 2001, 2005, 2006년인 것 같았다. 그 해가 특별한 이유는 뭘까? 20대였기 때문일까? 맞다. 그것도 클 수 있다. 하지만 20대의 다른 해들도 있는데 유독 그 네 해만 떠오르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 이유는 바로 내 인생 전체를 통틀어서 내 의지대로 오롯이 살았던 날들이 그 해를 제외하고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체로 책임감, 의무감, 또는 주변의 기대나 시선 같은 실상은 내 의지와 다른 것들에 의해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내 인생의 대부분의 날들 또한 그런 것들로 채워진 순간이었다. 아마 경우에 따라서는 평생을 전부 그런 시간들로 살아온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돌아보니 저 4년만큼은 내 생각대로 내 맘대로 살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40년 넘는 인생을 살아 왔지만 실상 몇 년을 살았냐고 물어본다면 그 네 해가 전부가 아닌가 싶기도 한 서글픈 생각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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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책 "실패를 통과하는 일"에는 강철의 연금술사 이야기가 나온다. 이 작품이 명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로 작가가 처음부터 최종화에서 할 이야기를 정해 두고 첫 화를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내용이 있었다. 우리의 인생도 어쩌면 그럴지 모른다. 끝을 떠올려야 비로소 지금의 삶이 선명해지는 순간이 있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 죽는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은, 결국 현재를 충실히 더 잘 살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통계청에서는 생각보다 재미난 통계를 많이 발표한다. 그런 것 중 하나로 생명표가 있다. 생명표는 한국 사람들의 나이와 성별에 따른 대략적인 기대 여명을 알려준다. 2023년 자료가 최신인데 그 자료에 의하면 나에게 이제 남은 시간은 37년 남짓이다. 살아온 시간이 살아갈 시간보다 한참 많아진 셈이다. 또 그 생명표는 어쨌든 평균이니 나에게는 그만큼의 시간도 없을 확률이 높다. 37년이면 긴 시간 같지만 또 따져보면 이제 나에게는 37번의 여름 뿐이라는 말도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뭔가 아쉽기도 하고 매 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해야겠다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가을이 온다. 내 인생에서 마흔 번도 채 남지 않은 가을이 오고 있다. 25%의 시간은 아이들에게 저당잡혔지만, 남은 75%의 시간은 내 의지대로 오롯이 살았던 2025년 가을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에는 "아, 2025년의 그 가을도 있었지" 하고 미소 지을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codemaru
돌아보니 좋은 날도 있었고, 나쁜 날도 있었다. 그런 나의 모든 소소한 일상과 배움을 기록한다. 여기에 기록된 모든 내용은 한 개인의 관점이고 의견이다. 내가 속한 조직과는 1도 상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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