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기] 조선의 과거 시험 경쟁률은?! (feat. 흠영)

@codemaru · June 10, 2025 · 9 min read

최근에 18세기 조선의 양반 유만주가 쓴 흠영이라는 책을 읽게 됐다. 이 책은 몇가지 점에서 몹시 인상 깊었는데, 1) 저자가 쓴 일기를 모은 책인데 20살부터 13년 동안 거의 매일이 기록돼 있다는 점, 2) 유명인사가 아닌 철저하게 일반인인 저자가 작성했다는 점. 유만주는 양반이긴 했으나 음서제로 관직에 진출할만큼의 좋은 집안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과거에 급제할만큼 뛰어난 사람도 아니었다. 3) 18세기 조선이라면 꽉 막힌 세상일 것 같은데 생각외로 유만주의 생각들은 요즘 생각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들이 더러 있다는 점. 4) 서로 다른 시간대의 비슷한 공간을 가진 사람으로써 기호와 취향이 비슷하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어쨌든 간만에 아주 재미있는 책이었고, 이 자리를 빌어 이 책을 추천해준 ChatGPT 4o에게 심심한 감사를 전한다.

책의 주된 내용 중 하나가 유만주가 조선의 과거 시험에 대한 어려움과 방식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점이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유만주 개인도 책과 독서를 애정하는 사람이며, 글을 보면 글도 매우 잘 작성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그는 평생을 과거 시험에 메달렸지만 급제하지 못하고 34살의 나이로 요절했다.

책을 읽다가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이렇게 책 좋아하고 똑똑해 보이는 사람도 합격이 힘들다면 조선시대 과거 시험은 도대체 경쟁률이 어떤 수준이었을까? 그래서 찾아봤다.

“21일의 경과는 3곳으로 나누어 치렀는데 총 응시자는 11만1838명에 달했고, 시권(답안지)를 바친 자는 모두 3만8614명이었다. 다음날의 인일제 응시자는 모두 10만3579명이었고, 시권을 바친 자는 3만2884명이었다…”(<정조실록> <홍재전서>)

이틀간 답안지를 제출한 응시생만 해도 7만1498명에 달했는데요. 그중 첫날의 경과를 통해 10명, 이튿날 인일제에서 2명의 합격자가 선발되었으니 어떻습니까.

https://www.khan.co.kr/article/202111220603001

이건 정조때(1800년) 세자 책봉을 기념해서 치러진 안일제라는 특별 과거 시험의 경쟁률이다. 첫날만 보면 10명이 뽑혔는데 지원자가 111,838명이다. 0.008% 합격률. 통상의 조선의 과거 시험은 3년에 한 번 치러지고 최종 대과 합격자는 33명을 뽑았다고 한다. 대략 지원자를 10만명으로 퉁친다면 0.033% 정도 되겠다. 사실 이정도로는 어느 정도 수준인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응시자 수는 392,783명이고, 서울대학교 의대 정시 정원이 42명이다. 0.01%, 연대, 고대까지 포함하면 135명으로 0.034%다. 결국 조선 시대 과거 시험은 대략 서연고 의대 정시로 갈만큼 어려웠다고 볼 수 있겠다.

실제 인물을 통해서 그 극악 난이도를 알 수 있는데, 지폐에서 흔히 보는 퇴계 이황 선생님 께서도 과거에 3번 낙방하고 대과에 처음 급제한 건 34살의 나이였다고 한다. 열하일기로 유명한 연암 박지원 선생은 과거 시험은 많이 쳤지만 급제한 적이 없다. 모두 낙방해서 결국은 음서제(집안빨 등용)로 관직에 진출했다고 한다. 9번 장원급제했다고 알려진 불세출의 천재 율곡 이이도 대과를 9번 장원급제한게 아니다. 대과를 가는 길에 있는 소과를 포함해 모두 9번 장원 급제한 것이고, 처음 대과를 급제한 29세 전인 23세 시험에서는 대과에서 낙방했다.

그러다 다시 의문이 들었다. 조선이란 나라는 당췌 3년에 33명 뽑아서 관직을 주면 도대체 나라가 어떻게 돌아갔다는 말인가? 빈 자리가 이렇게 안나왔던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년이 없었다해도 죽는 사람이 있으니 자리는 계속 생길텐데 이렇게 조금 뽑아서 그게 유지가 됐냐는 생각. 그래서 조금 더 검색해보다 충격적인 사실을 접했다.

  1. 대과에 급제한 33명 모두 관직을 받은 건 아니었다. 우수 3명에게만 관직을 부여하고, 나머지 인원은 합격증과 어사화 정도 주고 퉁쳤다.
  2. 총 관직수 5605직이었지만, 은퇴자를 위한 자리 3110직, 돈안주는 자리 95직, 실질 자리수는 2400직, 그 중 문관직 1779직이 거의 전부였다고 한다. 이 몇 개 안 남는 자리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서 싸운게 당파싸움의 실질 원인 중 하나였다고 한다.
  3. 그러니 실질 확률은 0.033%의 1/11인 0.003%라고 할 수 있다.
  4. 이런 말도 안되는 난이도의 과거 시험에 모든 양반이 목메단 이유도 있었는데, 다름 아닌 3대 동안 과거 급제자가 한명도 안나오면 양반을 박탈하고 양인으로 강등시켰기 때문.
  5. https://www.paju.go.kr/news/user/BD_newsView.do?q_ctgCd=1002&newsSeq=419

예나 지금이나 하는 일 없이 밥그릇만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늘 있는 것 같다. 실질 관직이 2400직인데, 은퇴자를 위한 자리가 3110직이니 말이다. 조선이 500년 더 유지됐다면 아마 6000직은 됐을듯한?! 그리고 조선 시대를 살아남은 양반 가문이라면 자부심을 가져도 될 법 하겠다. 3대에 걸쳐 서연고 의대로 정시 한 명은 합격 시켰다는 의미가 될테니 말이다.

퇴계 이황 선생님이 34살의 나이게 과거에 처음 급제했다는 걸 보면 유만주는 너무 일찍 요절한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그의 책을 보면 그가 더 살았더라도 아마 과거에 급제하지는 못했을 거란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그 또한 묘하게 반골 기질이 있기 때문이다. 시험을 위한 시험, 공부를 위한 공부가 무슨 의미가 있냐는 한탄을 그의 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 그는 과거 시험을 위한 공부 자체에는 별 흥미가 없었을 수 있다.

@codem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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