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codemaru · January 29, 2022 · 12 min read

저자

매트 헤이그, 영국 소설가. 우울증과 불안 장애로 자살 시도를 하고 극복한 경험이 있음. 그래서 관련된 내용에 관한 저술이 많아 보인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도 그런 연장선상의 책이다.

줄거리

주인공 노라는 되는 일이 없다. 재능은 많았지만 많은 것들을 포기했다. 게다가 우울증과 불안장애 증상까지 있다. 키우던 고양이가 죽고, 직장을 잃으며 삶의 나락으로 몰린 주인공은 자살 시도를 한다. 그리고 자살 시도 과정에서 삶과 죽음의 중간 단계에 있는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에 간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에서는 노라가 사는 동안 후회했던 것들을 바꾼 다양한 삶을 경험해 보게 된다. 그 경험한 삶이 마음에 든다면 그곳에서 살아도 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시 라이브러리로 돌아올 수 있다. 노라는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되기도 하고, 성공한 록밴드 작곡가 겸 보컬이 되기도 하고, 빙하학자가 되기도 한다.

이런 온갖 다양한 삶을 경험하면서 역설적이게도 노라는 삶의 이유를 깨닫는다 그리고 다시 원래의 삶으로 돌아오고 거기서 아직 쓰지 못한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계속 써내려 간다.

인상 깊은 구절

모든 게 달라진 이유는 이젠 그녀가 단지 다른 사람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상상 속 완벽한 딸이나 동생, 애인, 아내, 엄마, 직원, 혹은 무언가가 되는 데서 유일한 성취감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그저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목표만 생각하며 자신만 책임지면 그만이었다.

노라는 자신이 블랙홀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녀는 화산이었다. 그리고 화산처럼 그녀는 자신에게서 달아날 수 없었다. 거기 남아서 그 황무지를 돌봐야 했다.
역설적이게도 화산은 파괴의 상징인 동시에 생명의 상징이다. 용암이 흘러내리는 속도가 느려지고 열이 식으면, 용암은 응고되었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부서져 흙이 된다. 비옥하고 영양가가 풍부한 토양이 된다.
자기 자신 안에 숲을 가꿀 수 있었다.

“이번 판은 선생님이 이기겠는데요.” 노라가 말했다.
엘름 부인의 눈동자가 갑자기 생기를 띠며 반짝거렸다. “그게 체스의 미덕 아니니? 어떻게 끝날지 모른다는 거.”
노라는 아직 체스판에 남아 있는 자신의 기물을 내려다보며 미소 짓고, 다음 수를 어떻게 둘지 생각했다.

노라는 다이아몬드에 대한 닐의 잘못된 지식을 바로잡아주지 않았다. 석탄과 다이아몬드는 둘 다 탄소이기는 해도 석탄은 불순물이 너무 많이 섞여서 아무리 압력을 가해도 다이아몬드가 될 수 없다. 광물학에 따르면 한 번 석탄은 영원한 석탄이다. 어쩌면 그게 현실적인 교훈일 것이다.

그녀가 둔 모든 수는 실수였고, 모든 결정은 재앙이었으며, 매일 자신이 상상했던 모습에서 한 걸음씩 멀어졌다.
수영 선수. 뮤지션. 철학가. 배우자. 여행가. 빙하학자. 행복하고 사랑받는 사람.
그중 어느 것도 되지 못했다.
심지어 ‘고양이 주인’이라는 역할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혹은 ‘일주일에 한 시간짜리 피아노 레슨 선생님’도. 혹은 ‘대화가 가능한 인간’도.

난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어. 빙하학자가 되지 못했어. 댄의 아내가 되지 못했어. 엄마가 되지 못했어. 라비린스의 리드 보컬도 되지 못했어. 정말로 좋은 사람 혹은 행복한 사람이 되지 못했어. 볼테르도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어.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 제대로 죽지도 못했다.

“모든 삶에는 수백만 개의 결정이 수반된단다. 중요한 결정도 있고, 사소한 결정도 있지. 하지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할 때마다 결과는 달라져. 되돌릴 수 없는 변화가 생기고 이는 더 많은 변화로 이어지지. 이 책들은 네가 살았을 수도 있는 모든 삶으로 들어가는 입구야.”

“걱정 마라. 화장지는 인생과 같아. 늘 더 있는 법이야.”

댄에게는 장점이 훨씬 많았다. 아픈 노라의 엄마에게 극진히 대했고, 어떤 주제에 관해서든 편안히 이야기할 수 있었고, 미래에 대한 꿈으로 가득 찼으며, 매력적이고 함께 있으면 편안했다. 또한 예술을 열렬히 사랑했고, 길에서 노숙자를 보면 늘 걸음을 멈추고 얘기를 나눴다. 세상에 관심을 가졌다. 사람은 도시와 같아서 마음에 덜 드는 부분이 몇 개 있다고 해서 전체를 거부할 순 없다. 위험해 보이는 골목길이나 교외 등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을지라도 다른 장점이 그 도시를 가치 있게 만들어준다.

“왜냐하면 노라, 때로는 살아봐야만 배울 수 있으니까.”

읽은 후

읽기는 굉장히 편한 책이다. 서사 구조가 복잡하지 않고 단조롭고 교훈적이다. 그리고 한 100페이지쯤 읽으면 책 내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대충 예측이 된다. 심지어 마지막에 현재 삶을 의미하는 책을 찾겠다는 것까지.

다만 소설적인 재미를 떠나 소설이 제공하려는 교훈을 끌어내는 측면에서 바라보자면 너무 급진적인 측면이 있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인생을 경험하고 후회를 되돌려본 인생이 자기 생각과 달랐다는 측면이 있었다는 것까지는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런 다양한 인생 경험을 토대로 블랙홀로 생각했던 내 인생이 화산이었다고 바라보는 시각을 변경하는 과정은 개연성이 충분한가 라는 생각이 든다.

살아봐야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또 아직 끝나지 않았다면 인생은 끝날 때까지 어떤 게임이 될지는 알 수 없다. 어떤 게임이 되었든 그것도 멋진 한 판의 바둑이었을 것이다. 다만 현실적인 생각을 조금 해보자면 게임이 진행될수록 경우의 수는 급격히 줄어든다는 점이다. 바둑판에 돌이 많이 있을 수록 경우의 수는 점점더 제한된다. 체스판의 기물이 줄어들수록 경우의 수 또한 급격하게 줄어든다. 그래서 시작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한판의 게임이 펼쳐질 가능성이 있겠지만 중반을 넘어서면 사실상 경기의 궤도는 어느 정도 정해진 경우가 대다수다. 따라서 끝날 때까지 끝난 건 아니고, 어떤 게임이 될지 알 수 없다는 말처럼 희망이 있을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는 게임이 진행될 수록 삶이 진행될수록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와 그 선택으로 벌어질 수 있는 희망의 가능성은 줄어든다.

저자와 달리 나는 시뮬레이션 우주론과 결정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고, 자유의지는 없다고 믿는 편이다. 그런 나에겐 테드 창의 조언이 조금 더 현실적이란 생각이 많이 들었다.

자유의지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라. 설령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어도, 스스로 내리는 선택에 의미가 있는 듯이 행동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무엇이 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당신이 무엇을 믿느냐이며, 이 거짓말을 믿는 것이야말로 깨어 있는 혼수상태에 빠지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문명의 존속은 이제 자기기만에 달려 있다. 어쩌면 줄곧 그래 왔는지도 모른다.

-- 숨(우리가 해야 할 일) | 테드 창

이책과 비슷한 내용으로 훨씬 극적으로 삶의 의지를 불태우게 해주는 컨텐츠로 K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추천하고 싶다. 어쩌면 복잡한 내용을 떠나서 우리 모두가 듣고 싶은 이야기는 결국 이 한 마디가 아닐까. 괜.찮.아...

@codem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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