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2009/03/31 13:54



정비석 선생님이 쓰신 초한지가 읽고 싶어서 헌책방을 뒤지다 들고온 책 입니다. 한 장 한 장 넘기기가 참 힘든 그런 책이더군요. 여자들 이야긴데 왠지 심하게 공감이 가는 그런 책. 결혼을 그닥 하고 싶지 않다는 저의 생각에 느낌표를 하나쯤은 더 던져준 책. 씁쓸한 여운이 남는 책. 그런 책이었습니다.
"대체 일부일처제라는 게 인간의 본성에 얼마나 어긋나는 겁니까. 한 인간이 어떻게 한 이성만을 평생 사랑하고 그렇게 산다는 게 가능하기나 한 이야깁니까? 안 그래요?"

이미 식어 버린 커피에 하얀 크림은 섞이지 못한다. 남자와 여자의 이해심도 사랑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겨울이 와도 생활은 남는다. 원고료를 세고 판매 부수를 걱정하고...... 낡은 바바리를 입은 채 진열장에 걸린 새로운 유행의 바바리 코트를 바라보고, 그런 생활은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었다.

"글쎄...... 아까도 말했지만 결혼생활 어디를 찾아봐도 내가 없었어. 난 한때는 글도 잘 쓰고 공부도 잘하고 꽤 칭찬도 받았던 괜찮은 여학생 이었는데..... 그 남자의 학비가 없으면 나는 어느덧 그 남자의 학비가 되고, 그가 배가 고프면 나는 그 남자의 밥상이 되고, 그 남자의 커피랑 재떨이가 되고, 아이들의 젖이 되고, 빨래가 되고...... 그 남자가 입을 여는 동안 나는 그럿 글들이 되어 있었어. 나는 목욕탕 앞의 발닦개처럼 모든 사람들이 나를 밟고 가도록 내버려 두었어. 하지만 그런 순간에도 말야...... 난 누구보다 내가 똑똑하고 현명하고 그리고 나 자신을 지키는 여자라고 누가 물었다면 맹세라도 했었을 거야. 우습지 않니?"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는 말이 경전에 나온다고 해서 찾아보니 숫타니파타에 나온 내용이라는 군요. 좋아서 퍼왔습니다. 구절 구절 저를 돌아보게 만드는 말이네요.
서로 사귄 사람에게는
사랑과 그리움이 생긴다.
사랑과 그리움에는 괴로움이 따르는 법.
연정에서 근심 걱정이 생기는 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숲속에서 묶여 있지 않은 사슴이
먹이를 찾아 여기저기 다니듯이
지혜로운 이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욕망은 실로 그 빛깔이 곱고 감미로우며
우리를 즐겁게 한다.
그러나 한편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 마음을 산산이 흐트려 놓는다.
욕망의 대상에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서로 다투는 철학적 견해를 초월하고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 도달하여
도를 얻은 사람은
'나는 지혜를 얻었으니
이제는 남의 지도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알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탐내지 말고, 속이지 말며,
갈망하지 말고, 남의 덕을 가리지 말고,
혼탁과 미혹을 버리고
세상의 온갖 애착에서 벗어나
무소의뿔처럼 혼자서 가라.

세상의 유희나 오락
혹은 쾌락에 젖지 말고
관심도 가지지 말라.
꾸밈 없이 진실을 말하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물속의 고기가 그물을 찢듯이
한번 불타버린 곳에는
다시 불이 붙지 않듯이
모든 번뇌의 매듭을 끊어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마음속의 다섯 가지 덮개를 벗기고
온갖 번노를 제거하여 의지하지 않으며
애욕의 허물을 끊어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최고의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 정진하고
마음의 안일을 물리치고
수행에 게으르지 말며
용맹정진하여 몸의 힘과 지혜의 힘을 갖추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애착을 없애는 일에 게으르지 말며,
벙어리도 되지 말라.
학문을 닦고 마음을 안정시켜
이치를 분명히 알며 자제하고 노력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빨이 억세고 뭇짐승의 왕인 사자가
다른 짐승을 제압하듯이
궁벽한 곳에 거처를 마련하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자비와 고요와 동정과 해탈과 기쁨을
적당한 때에 따라 익히고
모든 세상을 저버림 없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탐욕과 혐오와 헤맴을 버리고
속박을 끊어 목숨을 잃어도 두려워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숫타니파타'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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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dream | 2009/04/22 16:54 | PERMALINK | EDIT/DEL | REPLY

    후덜덜.

    조용한 호수에 작은 풀잎 하나 띄워봅니다.

    요즘 포스팅이 많이 뜸하시네요 ㅠ_ㅠ; 바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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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ndwing | 2009/04/23 11:14 | PERMALINK | EDIT/DEL | REPLY

    옛날에 읽었던 책이 갑자기 생각나서 검색하다가 우연히 들어와보게 되었네요.
    책은 다 읽으셨나 모르겠습니다.
    저도 이번 연휴때 뚝딱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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