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 당신의 연말 정산 이야기

@codemaru · February 06, 2017 · 18 min read

연말 정산 시즌이다. 이맘때면 한숨과 고성이 오간다. 13월의 급여를 받는 사람도 있고, 한달치 급여가 사라진 사람들도 있다. 연말 정산의 아픔이 잊혀질만한 4월이 되면 건보료 폭탄이 또 한 번 때린다. 대체로 급여가 오른 만큼 건보료도 정산해서 토해낸다. 그때는 다들 한숨만 깊어진다. 나이가 들고 연봉이 오르고 하다보면 결국 알게 되는 건 세금 밖에 없다.

토해내는 입장에서는 도대체 돌려 받는 사람들은 왜 돌려받는지가 무척 궁금해진다. 그리고 무지에 의해서 마치 엄청난 비밀이 숨어 있는 것처럼 음모론들을 제기해 보지만 거기에 음모 따위는 없다. 그저 여러분이 국가가 장려하는 활동을 많이 하면 혜택을 많이 주고, 국가가 싫어하는 활동을 많이 하면 세금이 많아지고 하는 것이다. 각설하고 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연말 정산이 어떤 구조로 이루어지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연말 정산은 말 그대로 일년 동안 내야할 세금을 최종적으로 확정짓는 과정이다. 대한민국은 급여소득자에게 세금을 미리 원천 징수하고 나중에 다시 정산 과정을 통해서 원천 징수한 금액이 많으면 돌려주고, 적으면 더 받아내는 시스템을 사용한다. 흔히 직장인 급여를 유리 지갑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애초에 받을 때 국가에 신고가 들어가고 세금은 공제하고 남은 차액만 받기 때문이다. 당신의 급여 명세서 항목 중에서 소득세와 지방세라는 것이 국가가 이렇게 미리 뜯어가는 비용이다.

그러면 그냥 원천 징수만 하고 끝내면 될텐데 왜 연말 정산이라는 것을 할까? 원천 징수는 표준 모형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원천 징수를 얼마 할지는 급여가 정해지면 일괄적으로 책정된다. 하지만 국가가 그리 나쁜 놈들은 아니다. 아니면 더 나쁜 놈일수도 있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국가는 사람들이 그 급여를 몽땅 다 써버리길 원하지 않는다. 그들의 미래를 위해서 쓰기를 바라기도 하고 자신들의 세금 계산을 위해서 현금이 아닌 카드를 사용하기를 원하기도 한다. 또 부양 가족이 있어서 돈이 많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세금을 감면해 주기도 한다. 결국 국가는 최종적으로 개개인들에게 그들의 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에 대한 인센티브를 세금을 통해서 제공한다고 보면 된다.

그럼 먼저 소득세를 어떻게 계산하는지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자. 대한민국의 소득세는 누진적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즉 많이 벌면 세금을 더 많이 내도록 된 구조다. 살펴보면 1200만원 이하는 6%의 세금을, 그 다음 4600만원 이하는 15%의 세금을 그 다음 8800만원 이하는 24%의 세금을, 그 다음 1억 5000만원 이하는 35%의 세금을, 그 다음 5억 이하는 38%의 세금을, 5억을 초과하면 40%의 세금을 낸다. 자, 통크게 내 연봉이 10억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럼 얼마를 세금으로 내야 할까? 1200만원까지는 72만원 4600만원까지 510만원, 8800만원까지 1008만원, 15000까지 2170만원, 5억까지 13300만원, 끝으로 10억까지 20000만원을 세금으로 낸다. 다 더하면 72 + 510 + 1008 + 2170 + 13300 + 20000 = 37060만원을 세금으로 낸다. 여기에 10% 지방세가 붙는다. 3706만원을 지방세로 납부하니 최종적으로는 10억을 벌면 국가에 4억 하고도 766만원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계산하고 공제하는 더 간편한 방법이 있다. 단지 어떻게 세금이 누진되어 가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불편한 방법을 썼다.)

다음으로는 이제 이렇게 산정된 소득세에 대해서 어떤 방식으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살펴보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소득 공제이고 다른 하나는 세액 공제다. 소득 공제는 전체 소득에서 정해진 만큼 빼고 세금을 계산하는 방식이고, 세액 공제는 최종 확정된 세금에서 정해진 만큼 빼는 구조다. 이 둘의 차이는 쉽게 말하면 이렇다. 소득 공제는 세금 계산 전에 빼기 때문에 혜택이 차등적이고, 세액 공제는 균등하다. 다시 말하면 소득 공제는 배율을 확정짓기 전에 빼기 때문에 고소득자일수록 유리하다. 최고 세율인 40%인 사람들의 경우 100만원 소득 공제가 되면 40만원을 돌려 받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가진다. 반면 소득세율이 15%인 사람은 15만원을 돌려받는데 그친다. 똑같이 100만원 쓴 것에 대한 혜택을 받는데 고소득자가 더 유리한 제도인 것이다. 반면 세액 공제는 최종 금액에서 차감하기 때문에 동일한 활동을 했을 때 고소득자와 저소득자가 받는 차이는 크게 없다.

여기서 조삼모사가 나온다. 예를 들면 연금저축을 들 수 있다. 이게 원래 400만원까지 소득 공제 항목에 있었다. 그러면 40% 세금을 낸다면 연 160만원을 돌려받을 수 있고, 20% 세금을 내는 사람은 80만원을 돌려 받는 구조였다. 그런데 정부에서 이를 세액 공제로 변경했다. 그리고는 400만원을 납입하면 연 100만원을 세액 공제 해준다고 한 것이다. 40% 세금을 내던 사람은 이제는 60만원을 덜 돌려 받게 되었고, 20% 세금을 내던 사람은 20만원을 더 돌려받게 된다. 즉, 대체로 세액 공제로 바뀌면 없는 사람에게 더 유리해 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그때 개욕을 먹었던 것은 저 세액 공제율을 잘못 선정하는 바람에 고소득자든 저소득자든 다 손해보는 구조를 만들어서 그런 것이었다. 물론 그것조차도 계획된 것일 수 있지만…​ (참고로 여기에 제시된 수치들은 가상적인 수치다)

자 이게 연말 정산의 모든 비밀이다. 국가가 세금을 미리 계산해서 가져갔고, 연말 정산을 할 때에는 이제 국가가 장려하는 활동에 얼마를 썼느냐에 따라서 세금을 다시 조정할 것이다. 국가가 좋아하는 일을 했다면 세금을 많이 돌려받을 것이고, 국가가 싫어하는 일을 했다면 그닥 못 돌려 받을 것이다.

2017년 대한민국은 어떤 활동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지 살펴보자. 소득 공제 항목을 살펴보면 이렇다. 부양 가족. 최고로 갑이다. 벌이가 없는 부모님, 자식 등을 부양가족으로 올리면 일정 수준 소득 공제를 해준다. 더불어 그 부양 가족이 사용한 모든 비용도 내가 사용한 비용으로 인정해준다. 일정 조건에 합당한 무주택자가 집 산다고 빌린 돈. 님들이 집을 사도록 국가가 유도하는 것이다. 어쨌든 이를 갚은 것들은 국가가 비용으로 인정해주고 일정 수준 세금을 감면해 준다. 신용카드 사용액, 이는 최초에는 현금이 아닌 신용카드 사용을 장려하기 위해 생긴 제도였다. 지금은 많이 퇴색되어 수명이 오늘 내일 하는 소득공제 항목 중에 하나다. 여기에 관해 생긴 가장 큰 오해 중에 하나가 연말 정산에서 많이 쓰면 많이 돌려받는 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용 카드 사용에 관해서는 아주 복잡한 공식이 존재하지만 결론만 말하면 쓰는 금액 대비 공제해 주는 양이 아주 적기 때문에 이를 위해서 지출을 늘리는 것은 정말 바보 같은 행위다. 기부금. 이는 사실 소득공제로 보긴 힘들다. 기부한 금액보다는 적게 소득 공제를 해주기 때문이다. 주택마련 저축 납입금. 집 산다고 통장을 만들어 납입하면 정해진 한도 내에서 소득 공제를 해준다. 그리고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 최고의 소득 공제 항목으로는 벤처 기업 투자가 있다. 조건에 해당하는 벤처기업에 투자할 경우 파격적인 소득 공제 혜택을 준다.

세액 공제 항목을 살펴보면 이렇다. 보장성 보험을 가입하면 연간 100만원 한도 내에서 일정 수준 세액 공제를 해준다. 일년에 여유되면 100만원 정도는 보장성 보험에 돈을 투자하라는 예기다. 연금저축 연간 400만원 한도 내에서 일정 수준 세액 공제를 해준다. 이는 말이 많은 항목인데 더 맡이 많아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정부의 안대로 지금 당장 납입하면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지만 나중에 연금을 받을 때 다시 세금을 납부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정말 조삼모사같은 상품이기 때문이다. 이는 실상은 과세 이연이지 혜택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래도 어쨌든 국가는 여러분의 미래를 위해서 연금을 들기를 희망하고 있다. 퇴직 연금 또한 연에 300만원 한도로 세액 공제를 해준다. 의료비, 교육비도 일정 수준 공제를 해준다. 또 정치 기부금의 경우 10만원까지는 전액 세액 공제가 된다. 좋아하는 국회의원이 있다면 10만원 기부하면 10만원을 돌려받게 된다. 참으로 신박한데 법을 누가 정하는지 알게되면 왜 이런 신박한 제도가 생겼는지 절로 이해가 된다. 월세에 대한 세액 공제도 해준다. 일정 수준의 조건이 맞아야 하지만 월세로 납부한 금액의 일부를 세액 공제로 돌려준다.

자 종합해보면 그렇다. 정부는 여러분이 결혼을 해서(+부양가족) 빚을 내서(+대출) 집을 산(+부동산) 다음에도 여유가 있다면 기부를 하기를 희망한다. 자신의 소득의 일정 수준 이상은 신용카드로 사용하기를 희망하고, 신용카드 보다는 체크카드 사용을 더 장려하고 있다. 보장성 보험을 연간 100만원 정도 내기를 바라고, 개개인의 미래를 위해서 연금 저축을 400만원, 퇴직 연금을 300만원 정도 매년 투자하기를 바란다. 국회 의원에게는 매년 10만원 정도 무조건 기부를 했으면 하고, 여러분이 그나마 월세에서 고통 받는 것을 조금은 덜어주고 싶어한다. 그리고 여러분이 이 모든 활동을 넘어서 돈이 너무 많은 자산가라면 벤처 기업에 투자하기를 희망한다.

조금 더 현실적인 조언을 해보자. 여러분이 일반적인 급여 수준의 미혼 남성이라면 어떤 활동을 하는 것이 좋을까? 일단 영혼까지 끌어모아 부양가족 수를 늘린다. 청약 저축을 만들고 매달 10만원씩 납부한다. 보장성 보험이 없다면 만들고 매달 9만원 정도 납부하고, 연금 저축을 개설하고 매달 34만원씩 납부하고, 퇴직 연금이 된다면 매달 25만원씩 납부하고, 12월에 한 번 그 해 제일 맘에 드는 국회의원에게 10만원 기부를 하면 대체로 정부가 원하는 대로 행동했다고 볼 수 있겠다. 물론 월세를 살고 있다면 월세 비용도 공제 받으면 금상첨화.

끝으로 최근 들어 생긴 조삼모사 끝판 대장 중에 하나를 소개하고 마칠까한다. 바로 원천 징수율을 결정하는 것이다. 80%, 100%, 120% 중에 선택할 수 있다. 적게 내고 적게 돌려 받을 지, 사전에 많이 떼고 많이 돌려받을지 결정하는 것이다. 대체로 자금 관리에 자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80%가 유리하다. 왜냐하면 시간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이자도 없이 정부가 일년간 묵혔다가 주는 돈을 받는 것 보다는 먼저 많이 받고 그 돈을 투자해서 불리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이상적인 사람으로만 구성되었다면 사실상 100%와 120%는 의미 없는 선택지다. 하지만, 여러분이 비자금이 필요한 유부남이라던가, 자금 관리에는 젬병인 사람이라면 120%를 선택하는 것도 나쁘진 않다. 어쨌든 미리 많이 뗐기 때문에 돌려 받을 돈이 많을 수 밖에 없다. 강제 비자금 통장, 강제 적금 통장으로 국세청을 이용하는 셈이된다.

@codem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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