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 천재성에 관한 통찰

@codemaru · June 05, 2016 · 12 min read

회사를 시작한지 한 10년 되다보니 만난 직원이 이제는 제법 된다. 그 중에서도 엔지니어로 일하는 직원들에게는 동병상련같은 감정을 많이 느낀다. 나도 그들과 같은 길을 지나왔고, 어쩌면 지금도 그 길을 가고 있기에 비슷한 생각을 많이 하고 또 유사한 고민도 많이 했기 때문이리라. 그런 직원들의 흔한 고민 거리 중에 하나가 주위의 똑똑한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생기는 자괴감이다. 한 직원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었다. 한달 내도록 주위를 보면서 '나는 뭔가’라는 생각에 멘탈이 탈탈 털리다가 그나마 입금되는 월급보고 충전된다고…​

사실 누구나 쉽게 예상하겠지만 우리 회사에는 다들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모여서 일을 한다. 물론 경쟁 업체보다는 많이 똑똑한 엔지니어들을 가려 뽑았다는 자부심은 있다. 하지만 대다수가 비슷비슷하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직원들의 상당수, 예외적인 사람 일부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은 그 사이에서 비교를 하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발생하는 불필요한 열등감으로 자신을 갉아 먹는다. 나는 대체로 김난도 선생의 비유를 들어 저마다의 시간이 있으니 굳이 비교할 필요 없이 각자의 길을 가면 된다는 조언을 당당하게 해주지만 어쩌면 이 또한 위선적인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나도 제법 프로그래밍을 했을 무렵 비슷한 고민에 빠졌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사피엔스" 이후로 엄청난 감탄을 하면서 읽은 책이 있었는데 "틀리지 않는 법"이라는 수학 책이다. 그 책의 천재성에 관한 저자의 견해 일부가 워낙 감탄스러워 여기 발췌해 본다. 아마 저자의 말처럼 이 교훈은 분야를 막론하고 비슷한 고민을 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조언인 것 같다.

수학을 오래 하다 보면 깨닫게 되는 것은(그리고 나는 이 교훈이 훨씬 더 폭넓게 적용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신보다 앞선 사람은 늘 있다는 사실이다. 당장 같은 교실에 있든 아니든 말이다. 이제 막 시작한 사람은 좋은 정리를 증명한 사람을 바라보고, 좋은 정리를 증명한 사람은 좋은 정리를 많이 증명한 사람을 바라보고, 좋은 정리를 많이 증명한 사람은 필즈상을 받은 사람을 바라보고, 필즈상을 받은 사람은 수상자들 중에서도 〈핵심〉에 속하는 사람을 바라보며, 그런 사람은 또 언제나 죽은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다. 거울을 보면서 〈인정하자, 나는 가우스보다 똑똑해〉라고 중얼거리는 사람은 세상에 한 명도 없다. 그런데도 가우스에 비하면 전부 바보인 사람들이 지난 백 년 동안 힘을 합쳐 노력함으로써 역사상 가장 풍성한 수학 지식을 일구어 냈다.

수학은 대체로 공동 사업이다. 공통의 목표를 추구하는 거대한 지적 네트워크가 만들어 낸 산물을 각자가 조금씩 더 발전시킨다. 비록 아치를 완성하는 최후의 돌을 얹은 사람이 특별한 영예를 누리기는 하지만 말이다. 마크 트웨인은 이 점을 다음과 같이 잘 표현했다. <전신이나 증기 엔진이나 축음기나 전화처럼 중요한 물건을 발명하는 데는 천 명의 사람이 필요했지만, 공은 마지막 사람이 다 차지하고 우리는 나머지 사람들을 잊어버립니다.

이것은 풋볼과도 비슷하다. 물론 한 선수가 경기를 완전히 장악하는 순간이 있기는 하다. 우리가 이후 오래도록 기억하고 기념하고 회상하는 것은 그런 순간들이다. 그러나 그것은 풋볼에서 보통의 상태가 아니고, 이기는 경기라도 대부분은 그런 순간 때문에 이기는 게 아니다. 쏜살같이 달려 나가는 와이드 리시버에게 쿼터백이 눈부신 터치다운 패스를 하는 데 성공했을 때, 우리는 많은 사람들의 협동 작업을 보는 것이다. 쿼터백과 리시버뿐 아니라 수비팀이 뚫고 들어오는 것을 막아서 쿼터백이 제대로 자세를 잡고 던지도록 시간을 벌어 준 공격팀 라인맨들이 있었고, 그 방어는 또 결정적인 순간에 수비팀의 주의를 흩뜨리기 위해서 핸드오프를 하는 척했던 러닝백 덕분에 가능했으며, 그 밖에도 경기를 조직한 공격팀 감독, 클립보드를 든 그의 많은 조수들, 선수들이 잘 뛰고 던질 수 있도록 돌봐 준 훈련 스태프들… 우리는 이 사람들을 다 천재라고 부르진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천재성이 벌어질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다.

테리 타오는 이렇게 썼다.

흔히 떠올리는 고독한(게다가 약간 미쳤을 수도 있는) 천재의 이미지, 즉 기존 문헌을 비롯한 관습적인 지혜들을 무시한 채 남에게 설명할 수 없는 영감에 따라(어쩌면 듬뿍 가해진 고통이 그 영감을 더욱 강화할 수도 있다) 모든 전문가가 골머리를 썩였던 문제에 대해서 놀랍도록 독창적인 해답을 찾아내는 사람의 이미지는 매력적이고 낭만적이지만, 한편으로는 터무니없이 부정확하다. 적어도 현대 수학의 세계에서는 그렇다. 우리는 물론 수학에 대해서 근사하고 심오하고 놀라운 결과들과 통찰들을 갖고 있지만, 그것은 많은 훌륭하고 위대한 수학자들이 수 년, 수십 년, 심지어 수백 년에 걸쳐서 착실히 연구하고 발전시켜 온 끝에 힘들게 얻어낸 누적적 성과이다. 이해의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발전은 굉장히 중대한 사건일 수도 있고 심지어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것은 완전히 새롭게 시작된 작업이 아니라 이전 연구들의 토대 위에 구축된 작업이다. …나는 오늘날 수학 연구의 현실이, 즉 직관과 자료와 약간의 행운에 따라 열심히 노력한 결과로 발전이 자연스럽게, 또한 누적적으로 생겨나는 현실이 내가 학생 때 품었던 낭만적 이미지, 즉 수학은 주로 희귀한 〈천재들〉의 신비로운 영감에 따라 발전한다는 이미지보다 훨씬 만족스럽다고 느낀다.

힐베르트를 천재라고 부르는 건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힐베르트가 해낸 일이 천재적이었다고 말하는 게 더 옳다. 천재성은 어떤 발생한 사건이지, 어떤 종류의 사람이 아니다.

-- 틀리지 않는 법

조금 실용적인 관점에서 다른 분야에 관한 조언이지만 조엘의 이야기도 곁들여 보면 좋겠다. 조엘은 작은 회사를 운영하는 것에 관해서 쓴 것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 견해가 개인의 발전과 성장에 관한 것이어도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오늘 하루 아주 조그마한 것이라도 새로운 것을 알아냈다면 그걸로도 만족할만한 일이다. 굳이 거창할 필요도 없고, 조급할 필요도 없다. 안그래도 짧은 인생, 스트레스 받으면서 살지는 말자.

저처럼 작은 회사를 운영한다면, 쏘면서 움직이는 방법은 두 가지 사항을 의미합니다. 장기적인 안목을 키워야 하며, 매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하다보면 조만간 당신이 이길 것입니다. 어제 하루동안 제가 한 일이라고는 FogBUGZ에서 컬러 정책을 조금 개선한 사항뿐입니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조금씩 발전해 나가는 겁니다. 날이 갈수록 우리 소프트웨어는 점점 더 좋아지며,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노릴 뿐입니다. 오라클 정도로 큰 회사가 되고 난 다음에 거대한 전략을 생각해도 늦지 않습니다. 매일 아침 출근해서 에디터를 여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 조엘 온 소프트웨어

@codem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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