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출산 이모저모

@codemaru · November 11, 2015 · 13 min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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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어디? 난 누구?

여긴 어디? 난 누구?

지난주 할머니와 음력 생일이 똑같은 기염을 토하면서 어여쁜 딸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누나들에게 매번 애들한테 왜그리 집착하며 사는지 점쩜쩜이라고 말을 하면, 누나들은 항상 니 애 낳아 보라는 대꾸를 했었다. 아직 일주일도 안 된 딸을 보면서 그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실감한다.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왜 그런지 말이다. 아이와 자식은 다른 느낌이다. 그냥 자고 있는 것만 보고 있어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뭔가 잘해줘야 할 거 같다는 느낌이 팍팍든다. 위험한 생각이 들때면 와이프랑 그래도 우린 맘충이, 빠충이는 되지 말자며 다짐한다.

#1

출산은 정말 시트콤 같았다. 와이프가 점심 때쯤 진통이 온다며 병원에 전화를 했다. 대략 5-10분 간격으로 온다고 말을 하고는 남편 퇴근하고 가도 되냐고 물으니 간호사가 지금 당장 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와이프의 콜을 받고 부리나케 병원으로 달려갔다. 원래 검사를 하던 의사는 없어서 다른 의사가 태동 검사를 하고 내진을 했는데, 뭐 자궁이 하나도 안 열렸고 진통도 별로 없는거 같다며 아직 한참이나 남았을 거 같은데 왜 왔냐는 늬앙스로 이야기를 했다.

누구나 한번쯤 겪는다는 빠꾸를 맞고는 앞에서 항정살에 7분 김치찌게를 먹었다. 밥을 먹는데도 와이프는 연신 배가 아푸다고 했다. 의사가 하도 완강하게 이야기해서 설마 벌써 그렇겠냐며 5분 간격으로 정확하게 오면 가자고 했다. 그리고는 내심 오늘은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엄마는 눈이 뒤집힐정도로 아플 때 병원을 가야 한다는 말을 했었다. 그런데 와이프는 너무 평온해 보였다. 진통이 올때 아파했지만 눈이 뒤집힐 지경은 아니었다.

회사 들어가기도 애매하고 혹시 몰라 집에 있었다. 앱으로 계속 시간 측정을 했다. 5분 내로 진통은 계속 왔지만 우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설마 의사가 그랬는데 불과 2-3시간 지났는데 시작됐겠어? 이건 아닐꺼야 그런 생각이었다. 저녁 먹을즈음에도 진통은 3-4분 간격으로 계속 왔다. 엄마가 뭐라도 먹어야 애도 낳는다는 말에 일단 밥을 먹자고는 배달 음식을 시켰는데, 그 배달 음식이 딱 도착하기가 무섭게 양수가 터졌다.

병원을 향해 달려갔다. 퇴근 시간인데다 서울대입구 4거리는 늘 헬게이트, …​ 와이프는 정말 눈이 뒤집히고 있었다. 눈물을 흘렸다. 어쨌든 병원에 도착했고 바로 분만실로 갔다. 간호산지 조산산지 뚱땡이가 왜 이제 왔냐며 뭐라고 했다. 아침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 했지만 의미는 없었다. 벌써 자궁이 5cm이나 열렸다고 했다. 30분쯤 지나자 7cm, 한시간 좀 넘어서는 8cm가 열렸다고 했다. 무통은 의미가 없다고 했다. 일찍 와야 맞을 수 있는데 이미 다 지나가서 지금은 맞을 수가 없다는 이야기. 와이프는 절규를 했다. 무통과 제왕절개를 욕과 함께 미친듯이 요구했지만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뚱땡이 간호사는 정말 불친절했다. 틱틱거리며 와이프에게 시종일관 명령과 지시의 태도를 보였다. 아픈데 그러니 말이 통할리가 없다. 난감한 상황. 하지만 3시간쯤 지나 출산이 임박했을 때 해결사가 들어왔다. 벌써 사람 다루는 폼새가 남달랐다. 특히나 목소리가 너무 좋았는데 마치 최면에 걸려서 그 말을 꼭 따라야 할 것 같은 그런 목소리였다. 와이프는 어렵지 않게 그 사람의 말을 따라했고, 몇 분 지나지 않아서 아이가 나왔다. 병원온지 3시간 50분 만에 순산했다. 의사가 오고 아기가 너무 쉽게 나와 좀 어이가 없었다. 힘주세요. 한 번 더 하는데 나왔다. 엉겹결에 탯줄을 끊었다. 채린이가 그렇게 태어났다.

어서와, 이런 세상은 처음이지

어서와, 이런 세상은 처음이지

의사가 그랬다. 상위 10% 들 정도로 순산했다고. 물론 거기 순위를 메긴다는게 우습긴 하지만 정말 쑨풍 나온 것 같긴 했다. 와이프 한테도 채린이한테도 고맙다. 옆에서 지켜보는 것도 보통 고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통과 제왕절개를 외치는 것을 가슴으로는 백번도 더 시켜주고 싶지만 머리로 말려야 한다는게 결코 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도 힘들었는지 그날 새벽 옷을 갈아 입으로 집으로 가서는 씻겠다고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그 안에서 잠이 들어버렸다 ㅋㅋㅋ~

#2

사실 난 대한민국 복지에 대해서 크게 느낀 바가 없다. 내 급여에서 상당한 금액의 의료보험료와 고용보험료가 나가지만 크게 병원을 간 적도, 실업 급여를 받은 적도 없다. 더 많은 국민연금을 내지만 그 연금을 잘 수령할지는 미지수다. 더 (체감상) 천문학적인 소득세를 내고 있지만 정말 이렇게까지 뜯어가야 하나 싶은 생각만 있었다. 그나마 약간 느낀게 엄마가 암 수술을 했을 때 중증 환자로 5%의 비용으로 치료를 받는 걸 보고는 의료보험은 그나마 제구실을 한다는 생각을 했었던게 전부였다.

그런데 이번에 아이를 낳고 보니 생각보다 우리나라가 그리 구리지는 않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우선 부탁한적도 없는데 자연분만에 드는 일체의 비용을 국가에서 부담해 주었다. 거기다 청각 검사와 대사 증후군 검사를 무료로 해주고, 그것도 모자라 결핵 예방접종도 해줬다. 병실료와 영양제 값만 나온 청구서를 보고는 참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관악구에 출생신고를 하러 가서는 선물을 안 줘서 조금 실망했지만 육아수당을 준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준다는 데 감사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물론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경우 모든 비용을 국가에서 부담한다. 그것도 초등학교 입학할때까지 모든 비용을 말이다.

보건소도 나쁘지 않다. 임신 중에도 각종 검사와 약을 지원해주고, 출산 후에도 상당히 많은 신생아 예방 접종을 지원해준다. 그것도 보건소에 가서 맞아야 된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대부분의 큰 병원이 모두 제휴가 되어 있어 그냥 병원에서 맞아도 비용을 다 국가에서 지불해준다. 참 편리한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

프로그래머는 숙명적으로 무엇인가의 이름을 지으며 살아간다. 언젠가 인터넷 설문조사에서는 프로그래머가 느끼는 고충 중에 당당하게 1위로 이름짓기(Naming)가 올라와 있었다. 어쨌든 그렇게 이름을 수도 없이 지으며 산다. 그래서 그랬을까? 와이프의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 이름이 뙇 떠올랐다. 딸이면 채린이라 짓고, 아들이면 태성이라 지으리라. 심지어 아들 이름은 한자까지 떠올랐다. 클 태에 이룰 성으로 지어야지 ㅋ~

병원에서 퇴원하는 날 난 엘티이급으로 출생신고를 했다. 하지만 이름을 가지고 잡음이 좀 있었다. 엄마가 어디서 지었냐는 출처를 계속 캐물었기 때문이다. 어디서 지었냐? 그렇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름을 대체로 스스로 짓지 않는다. 어딘가에 위탁한다. 철학관, 작명소 같은 곳 말이다. 사주도 풀고 그런단다. 내가 지었다는 말을 결코 신뢰하지 못할 우리 엄마를 위해서 월정사 명월스님에게 지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엄마가 조금 안심을 한다. 대기업 회장님들도 찾아가는 유명한 스님이라고 하자 더욱 신뢰를 하셨다. 우습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결혼을 하는 날짜도, 이사를 가는 날짜도, 이사를 가는 방향도, 애 이름도, 사업을 할지 말지도, 유학을 갈지 말지도, 우리 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스스로 뭔가를 결정하지 못하는 것 같다. 다 좋은게 좋은거고 조심해서 나쁠건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잡은 결혼 날짜에는 미친듯이 비가 왔다. 그제야 하는 말. 비 오는 날 결혼하면 잘산다는 이야기. 이건 뭐 피할 수가 없다 ㅠㅜ~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다 좋은데 이름 하나쯤은 내가 지어주고 싶었다. 내가 생각하는 딸에 대한 애정이랄까? ㅋ~

#4

산후조리원과 산후도우미, 어린이집에 관해서도 할 이야기가 많지만 시간 관계상 이쯤에서 마치는 걸로 ㅋ~

chaerin3

@codemaru
돌아보니 좋은 날도 있었고, 나쁜 날도 있었다. 그런 나의 모든 소소한 일상과 배움을 기록한다. 여기에 기록된 모든 내용은 한 개인의 관점이고 의견이다. 내가 속한 조직과는 1도 상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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